항목 ID | GC083007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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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薛昌海 |
영어공식명칭 | Seol Changhae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설창해(薛昌海)[?~?]는 영월 출신으로,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이때 설창해도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가담하여 영월을 비롯하여 경기도와 충청북도 제천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설창해는 1907년 8월 영월군 주천면에서 40여 명의 의병장들과 함께 이강년을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하고 영솔장(領率將)을 맡아 경기도 가평 부근에서 치러진 용소동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였다. 용소동 전투는 1908년 2월 17일 새벽부터 시작되었는데, 일본군 수비대가 출동하였다는 파수병의 보고에 따라 선봉장 하한서(河漢瑞)는 용소동 동남쪽 관청리를 지키고 후군은 관청리 뒷산에 매복하였다. 설창해는 별포로서 이강년 의병장과 함께 의병들을 이끌고 산마루로 올라가 기다리고 있을 때 하한서군이 매복한 곳으로부터 총성이 울렸다. 이에 설창해는 후군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여 100여 명을 사살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설창해의 공적을 기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