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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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雲先 |
영어공식명칭 | Kim Woons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엄찬호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 김운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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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월 12일 - 김운선 강원도 영월군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월 13일 - 김운선 강원도 평창군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전개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월 15일 - 김운선 일제 헌병에게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4월 26일 - 김운선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7년형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2016년 - 김운선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두산리 -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두산리 |
활동지 | 영월 - 강원도 영월군 |
활동지 | 평창 - 강원도 평창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성 |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김운선(金雲先)[1883~?]은 1883년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두산리에서 태어났다. 구한말 일제 침략에 저항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정미의병은 전기 의병인 을미의병과는 달리 해산 군인과 유생들을 비롯하여 평민들과 천민들도 의병에 참여하였고, 여성들도 의병 대열에 동참하였다.
김운선은 1909년 1월 11일 채경천(蔡敬天) 의병장 휘하에 들어가 채경천·박춘서(朴春西) 등과 함께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운선은 1909년 1월 12일 강원도 영월군 서면[현 한반도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월 13일에는 평창군 북면 하일리에서 이장 이 모(某)로부터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이어 1월 24일에는 영월군 좌변면[현 주천면]에서 군수품을 모집하다가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김운선은 1910년 4월 4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강도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고, 4월 26일 경성공소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징역 7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운선의 공적을 기려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