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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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正月大- |
영어공식명칭 | The 15th Day of the New Year according to the Lunar Calendar|The Day of the first full Moon of the Lunar Year |
이칭/별칭 | 대보름,상원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집필자 | 서해숙 |
[정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매년 음력 1월 14일과 1월 15일에 행하는 풍속.
[개설]
정월 보름을 대보름이라 하며, 한자로는 상원(上元)이라 한다. 지금은 큰 명절로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많지만, 농경을 위주로 한 우리나라에서는 설이나 추석 못지않게 성대하게 보냈다. 대부분의 세시 풍속이 대보름날을 전후하여 집중되어 있다. 무주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오곡밥을 지어 조상 차례를 모시고 보름 나가서 쇠기, 밤새기, 노두 놓기, 허새비 버리기, 거리제 등의 관련 풍속과 달집태우기, 불싸움, 널뛰기 등의 민속놀이 등이 성행하였다.
[연원 및 변천]
정월 대보름에는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거나 예측하는 풍속이 대부분인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후기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일부 문헌을 통해 살필 수 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세속에 전하기를 신라 소지왕(炤知王)이 까마귀 말을 듣고 금갑(琴匣)을 쏘아 화를 면한 이적이 있어 감사의 뜻으로 까마귀밥으로 만든 것이 약밥이고, 이것이 우리 고유의 풍속이 되었다고 한다.”라고 하여 보름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시골 사람들은 보름 하루 전날에 짚을 군대 깃발인 둑기[纛旗] 모양으로 묶고, 그 안에 벼·기장·피·조의 이삭을 넣어 싸고 목화를 그 장대 끝에 매달아 집 곁에 세우고 새끼를 사방으로 벌려 고정시킨다. 이것을 벼 낟가리[禾積]라고 하며, 이것으로 풍년을 기원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이를 통해 정월 대보름 풍속이 당시에 이미 행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절차/풍습]
무주 지역에서는 가정에 따라서, 마을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보름날 아침에 찰밥 혹은 오곡밥을 지어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데, 조상상을 차리기 이전에 삼신상과 성주상도 함께 차린다. 여기에 무주 지역에서 과거 정월 보름날이면 거행했던 관련 습속과 놀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오곡밥과 묵은 나물 먹기
음력 1월 14일 저녁에는 보리, 좁쌀, 팥, 멥쌀, 수수 등을 섞어서 오곡밥을 짓는다. 갈무리 해 둔 아주까리 잎, 김, 산나물, 취나물, 다래순, 호박오가리, 고구마 줄기 등을 볶은 다음에 반찬 삼아 먹는다. 이러한 정월 열 나흗날 저녁밥은 다른 날보다 일찍 해서 먹는데, 그렇게 하면 부지런해서 농사도 빨리 짓고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2. 보름 나가서 쇠기와 밤새기
보름은 나가서 쇠야 좋다고 하여 열 나흗날 밤에는 집에서 자지 않고 바깥에 나가서 밤을 지새우며 논다. 또한 열 나흗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하여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 남자들은 대개 사랑방에 모여서 떡국과 찰밥을 얻어먹으며 밤을 지새운다고 한다.
3. 노두 놓기
아들 낳기를 염원하는 가정에서는 열 나흗날 저녁에 오쟁이[오장치]를 만들어서 냇가에 노두[노두독: 징검다리]를 놓는다. 가로 세로가 각각 60㎝ 정도 되게 짚으로 만든 오쟁이에 자갈과 모래를 섞어 넣는다. 보통은 7개를 만들지만 간혹은 본인의 나이 수대로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냇가에 가져다 놓는데, 이 마을에서는 학교에서 올라오는 개울에 주로 놓는다. 이는 여러 사람이 편하게 이용하게 되므로 선행 중의 선행이라고 여겨 아들을 낳는 복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4. 허새비 버리기
식구 중 운수가 나쁜 사람이 있다면 정월 열 나흗날에 허새비[허수아비]를 만들어 거리에 버린다.
5. 거리제[질산제]
신수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정월 열 나흗날 저녁에 질산제를 지내는데, 당사자와 마을이 깨끗해야만 제를 모실 수 있다. 열 나흗날 저녁에 떡[백설기], 십 원짜리 동전 몇 개, 초 등을 가지고 세 갈래로 갈라진 길로 나간다. 길에 짚을 열십자로 깔고, 그 위에 떡을 놓고 축언[일용수]을 한다. 치성을 마친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며, 제물은 이웃집이나 큰집 사랑방에 가져다준다. 질산제 지낸 제물은 집으로 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6. 수세미와 똬리 만들기
여자들은 열 나흗날 밤에 모여 앉아 수세미와 똬리를 만든다. 짚을 뭉쳐 솥 닦는 수세미를 만들고, 왕골껍질을 벗겨 똬리를 만든다. 새끼를 길게 해 그것에 꿰어 매달아 두었다가 일 년 내내 사용한다.
7. 달집태우기
보름날 달이 뜨는 시각에 맞추어 달집에 불을 놓는다. 이를 ‘달 끄슬린다[그을린다]’라고 한다. 마을 앞의 논밭이나 마을 뒷산의 꼭대기에 달집을 만든다. 청년들이 낮에 청솔가지[솔가지]를 한 짐씩 베어다가 수북하게 쌓는다. 집집마다 한 사람씩 모두 나와서 나무를 해 오면 제법 커다란 달집을 만들 수 있다. 가운데에 3개의 굵은 나무를 엮어 원뿔형으로 만들고, 그 주위를 솔가지로 빙 둘러싼다. 보통 둘레가 5~6 아름 정도로 쌓는다. 그리하여 달이 떠오를 무렵이 되면 하나둘 달집 옆으로 모인다. 이윽고 달이 떠오르면 달집 아랫부분에 불을 놓는다. 달집에 불이 옮겨 붙어 활활 타오르면 꽹과리를 치면서 한바탕 놀이판을 벌인다. 이렇게 해야 그해에 풍년이 든다. 불이 꺼져 가면 다리미에 콩을 담고 숯을 넣어 흔든다. 이 콩을 먹으면 부스럼[종기]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8. 불싸움
달집태우기를 하는 한쪽에서 아이들이 짚이나 삼대[겨릅대]를 묶어서 횃대를 만든다. 짚보다는 겨릅[麻]대로 만들어야 오래도록 타는데, 삼을 키우지 않게 되면서 횃대 대신에 깡통에 불을 넣어서 돌린다. 횃대를 만들어 들고 들로 나가면 이웃 마을의 아이들도 무리를 지어 나간다. 논 중앙에 이르면 서로를 향해 횃대를 휘두른다. 횃대에 맞으면 화상을 입기도 하지만 서로 이기려고 물러서지 않는다. 불이 무서워 물러서는 사람이 많으면 지게 된다. 1960년대 초반까지 망월 드는 날이면 으레 불싸움을 했다고 한다.
9. 널뛰기
보름날에 여자들은 널뛰기를 하면서 어울려 논다. 이렇게 하면 가시에 찔리지 않는다고 한다. 널은 부엌[정지]문을 떼어다가 만드는데, ‘밑절미’는 짚단을 여러 개 뭉쳐서 놓는다. 남이 널을 뛸 때 널판 위에 앉아 있으면 젖가슴에 무엇이 난다고 하여 서로 꺼린다. 보름부터 여러 날 동안을 논다.
이외에도 정월 열 나흗날부터 보름날까지 각 가정에서는 종이옷 태우기, 팔랑개비 꽂기, 버선 꽂기, 불 밝히기, 체 달아두기, 양말 신고 자기, 식구 불 켜기, 키 엎어두기, 용왕제[요왕공], 절구질 하지 않기, 마당 일찍 쓸기, 아홉 번 행동하기, 보름밥·더위밥 얻어먹기, 칼질 하지 않기, 맨발로 다니지 않기, 노래기 쫓기, 까치밥 주기, 김쌈 먹기, 젓가락으로 밥 먹기, 더위팔기, 귀밝이술 마시기, 부럼 깨기, 까마귀·까치밥 주기, 소밥주기, 개보름쇠기, 취나물·두부·콩나물 먹기, 찬물 마시지 않기, 매운 음식 먹지 않기, 마당 쓸지 않기, 물 긷지 않기, 복조리 걸기, 엄나무 걸기, 날씨 점치기, 삼 농사 점치기, 여자 출입 금기, 안택, 디딜방아 훔치기, 액연 태우기 등의 풍속이 연행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차례와 관련한 민속놀이만 남고 거의 사라져 가는 풍속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