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과 백옥봉 글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250
한자 妓生-白玉峰-
영어공식명칭 Gisaenggwa Baegokbong Geulssi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7년 01월 26일 - 「기생과 백옥봉 글씨」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남자 노인회관에서 강치중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7년 - 「기생과 백옥봉 글씨」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
관련 지명 백광훈 묘소 -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 동촌리 지도보기
채록지 남자 노인회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물담
주요 등장 인물 옥봉 백광훈|기생|중국 선비
모티프 유형 최고의 문장가|기생의 무지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옥봉 백광훈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기생과 백옥봉 글씨」는 해남을 대표하는 문장가인 옥봉(玉峰) 백광훈(白光勳)[1537~1582]에게 평양 기생이 찾아가 여비 대신 치마폭에 글씨를 받았다는 이야기이다. 기생은 옥봉이 쓴 글씨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였지만 중국 선비들은 가치를 알아보았고 나중에 중국의 국보로 삼았다고 한다.

[채록/수집 상황]

「기생과 백옥봉 글씨」는 2017년 1월 26일 해남군 해남읍 수성리 남자 노인회관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강치중[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전라남도 해남군 북평면에는 해남을 대표하는 문장가인 옥봉 백광훈의 묘가 있다. 백옥봉(白玉峰)은 시를 매우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필체도 뛰어났다. 하루는 평양 기생이 옥봉이 글을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인사를 갔는데, 학생들만 있고 옥봉은 보이지 않았다. 학생에게 “선생님 어디 가셨냐?”라고 묻자, “저그 소풍 가더니 저기 오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멀리서 오는 옥봉의 차림새를 보니 한눈에도 매우 가난하게 보였다.

기대를 안고 여비라도 받아 가기 위해 찾아온 평양 기생은 추레한 옥봉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였다. 기왕 왔으니 인사라도 하고 가려는 마음으로 “나는 평양 사는 기생입니다.”라고 인사하였다. 그러자 옥봉은 여비를 챙겨 주지 못하여 미안하다면서 기생의 치마폭에 “금중여수신묘 옥중공항 담낭일필두[금을 주자니 여수 물이 깊어 줄 수가 없고, 옥을 주자니 공항이 멀어 못 주지만, 붓 끄트머리로 특별히 당부의 마음을 허락한다]

”라고 써 주었다.

옥봉이 써 준 글씨의 뛰어남을 알지 못한 기생은 비싼 치마를 버리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기생은 중국에 가서 기생 노릇을 하게 되었는데, 중국 선비들이 치마폭에 쓰인 옥봉의 글씨를 보고 감탄하며 치마를 비싼 값에 사 갔다. 나중에 기생의 치마에 쓴 옥봉의 글은 중국의 국보가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기생과 백옥봉 글씨」의 주요 모티프는 ‘최고의 문장가’, ‘기생의 무지’ 등이다. 옥봉에 대한 기생의 감정은 ‘기대-실망-원망-감사’로 변화한다. 기생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던 옥봉의 뛰어남을 인지하지 못하고 초라한 겉모습만을 보고 평가한다. 옥봉이 자신의 치마에 써 준 글씨의 가치를 알지 못한 기생은 치마를 버리게 되었다며 옥봉을 원망한다. 하지만 옥봉의 글을 한눈에 알아본 중국 선비가 비싼 값에 치마를 구매하자 기생은 옥봉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기생과 백옥봉 글씨」에서는 뛰어난 옥봉과 그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무지한 기생의 심리를 대립시켜 옥봉의 학자적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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