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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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晟夏 |
영어공식명칭 | Yun Sungha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상가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911년 06월 05일 - 윤성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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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29년 - 윤성하 광주공립농업학교 3학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11월 - 윤성하 광주학생항일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30년 10월 18일 - 윤성하 보안법 위반으로 금고 4월, 집행유예 5년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05월 29일 - 윤성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윤성하 건국포장 수훈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상가리 |
거주|이주지 | 광주광역시 |
학교|수학지 | 광주공립농업학교 - 광주광역시 |
활동지 | 광주광역시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1-463호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참가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윤성하(尹晟夏)[1911~1949]는 1911년 6월 5일 해남군 삼산면 상가리에서 태어났다. 광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이끌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윤성하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난 1929년 11월 당시 광주공립농업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한국인 학생들과 광주중학교 일본인 학생들의 충돌 사건을 계기로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전개되자 장재성(張載性)·장석천(張錫天) 등과 학생투쟁지도본부를 설치하고, 학생 투쟁을 항일 독립운동 성격을 지닌 시위로 전환시켜 나갔다. 1929년 11월 12일 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 200여 명과 함께 제2차 시위 투쟁에 참가하여 식민지 노예교육의 철폐와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도 확립,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 획득 등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광주고등보통학교 부근까지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 일로 윤성하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약 11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뒤 1930년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금고 4월,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윤성하는 1949년 5월 29일 사망하였다.
[묘소]
윤성하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1-463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윤성하의 공적을 기려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