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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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兪榮洪 |
영어공식명칭 | Yu Yeongh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905년 11월 11일 - 유영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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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6년~1936년 - 유영홍 전라남도 각지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42년 06월 17일 - 유영홍 해남군청에서 조선어 사용 역설 |
몰년 시기/일시 | 1943년 04월 28일 - 유영홍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86년 - 유영홍 대통령표창 수훈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유영홍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군이면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용머리길 112-29[용정리 406] |
거주|이주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대정정(大正町) 33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평동리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3-725호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42년 해남군청에서 조선어 사용 역설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유영홍(兪榮洪)[1905~1943]은 1905년 11월 11일 해남군 해남읍 용정리에서 태어났다. 해남군청에서 조선어 사용을 역설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유영홍은 1926년 9월부터 1936년까지 전라남도 각 지역에서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42년 6월 17일 오전 11시 해남군청을 방문하여 내무과장에게 용무가 있어 조선어로 말을 걸었는데, 당시 내무과장은 일본어를 사용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이때는 해남군청에서 내건 일본어전용운동 강조 기간이었다. 이에 유영홍은 내무과 직원 30여 명 앞에서 “최근 보통학교에서 조선어의 교수를 하고 있지 않으나 조선어의 폐지는 우리들 조선 민족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이고, 조선 독립의 실현을 저해하는 것이니 오히려 조선어를 장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의 현재 교육제도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대로 나아가면 조선인은 영구히 일본인에게 억압당하고 조선 독립의 시기를 잃을 우려가 있다. 현재의 전쟁은 조선 독립의 절호의 기회이다.”라는 내용을 조선어와 일본어를 교대로 사용하여 큰소리로 외쳤다.
유영홍은 이 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43년 2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다. 1943년 4월 28일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사망하였다.
[묘소]
유영홍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3-725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유영홍의 공적을 기려 1986년 대통령표창,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