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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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呂孟祚 |
영어공식명칭 | Yeo Maengjo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해창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894년 2월 20일 - 여맹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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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04월 25일 - 여맹조 해남 독립 만세 운동 참가 |
몰년 시기/일시 | 1930년 01월 15일 - 여맹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9년 - 여맹조 대통령표창 수훈 |
출생지 | 전라도 해남현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
거주|이주지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
활동지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2-1059호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
성격 | 독립유공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19년 4월 산이면 해창리 독립 만세 운동 전개 |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여맹조(呂孟祚)[1894~1930]는 1894년 2월 20일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4월 만세 시위를 선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해남군 해창리에 거주하며 농사를 짓던 여맹조는 1919년 3월 이래 전국 각지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지만, 정작 자신의 마을에서는 만세 운동이 발생하지 않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20년 4월 25일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右水營)에서 시위 운동을 한다는 소식을 접한 후, 4월 26일 종이 두 장에 “대한 독립 만세”라는 글씨를 크게 쓰고, 또 다른 한 장에는 “우리 면에서도 어느 날 조선 독립 시위 운동을 하려고 계획 중인데, 열심히 이 운동에 참가합시다.”라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여맹조는 이 종이 세 장을 26일 밤 10시경 마을에서 해남읍으로 통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붙였다.
이 일로 여맹조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되어 1920년 5월 7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여맹조는 1930년 1월 15일 사망하였다.
[묘소]
여맹조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2-1059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9년 대한민국 정부는 여맹조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