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6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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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化仙 |
영어공식명칭 | Park Hwasu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성환 |
출생 시기/일시 | 1873년 12월 8일 - 박화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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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 박화선 황두일 의진 합류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04월 14일 - 박화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5년 - 박화선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08년 12월 23일(음력) - 박화선 부일 협력자 최덕관 처단 |
출생지 | 전라남도 해남군 화일면 방축리 784 -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방축리 |
활동지 | 전라남도 해남군 송종면 미황사 일대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1908년 황두일 의진에서 활동 |
[정의]
개항기 해남 출신의 항일 의병.
[개설]
박화선(朴化仙)[1873~1949]은 황두일(黃斗一) 의진에서 활동한 의병이다. 해남군 송종면[현 송지면] 미황사(美黃寺) 일대를 무대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박화선은 1873년 12월 8일 해남군 화일면 방축리 784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국권이 무너지는 상황에 분개하여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다.
일본은 1904년 러일전쟁 승리 이후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하였다. 1907년에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는 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친일파들을 물리쳐 국권 회복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 박화선은 1908년 강자선(姜自仙)·이봉기(李鳳奇) 등과 더불어 황두일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박화선은 황두일 부대의 활동을 일본 관헌에게 밀고한 부일 협력자 최덕관(崔德寬)을 처단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1908년 음력 12월 22일 동지들과 함께 강모(姜某)를 부장(副將)으로 추대하고, 다음날인 음력 12월 23일 새벽 삼마동에 살고 있던 최덕관을 결박하여 동리 앞 밭으로 끌고 가 총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박화선은 일본 경찰에 붙잡혀 1910년 9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징역 3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박화선은 1949년 4월 1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대한민국 정부는 박화선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