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35
한자 白振南
영어공식명칭 Baek Jinnam
이칭/별칭 선명(善鳴),송호(松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64년연표보기 - 백진남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백진남 진사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597년 - 백진남 정유재란 때 백의종군으로 참전
몰년 시기/일시 1618년연표보기 - 백진남 사망
거주|이주지 서울특별시 - 서울특별시
성격 문인
성별
본관 해미(海美)

[정의]

조선 후기 해남 출신의 문인.

[가계]

백진남(白振南)[1564~1618]의 본관은 해미(海美)이며 자는 선명(善鳴), 호는 송호(松湖)이다. 할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백세인(白世仁)이며, 아버지는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이다. 어머니는 정강왕의 딸 하동정씨(河東鄭氏)이며, 부인은 선전관 윤관중(尹寬中)의 딸 해남윤씨(海南尹氏)이다.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백광홍(白光弘), 백광안(白光顔)의 조카이다.

[활동 사항]

백진남은 1564년(명종 19) 해남에서 태어났다. 1578년 아버지 백광훈을 따라 서울로 가는 길에 남원 광한루에서 백광훈임제(林悌), 이달(李達), 양대박(梁大樸) 등과 어울릴 때 시를 지어 보여 사람들이 감탄하였다고 한다. 1582년(선조 15) 아버지 백광훈이 사망하자 삼년상을 마친 후 1590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백진남은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의 진중에 머물며 호남의 선비 정운희(丁運熙)·김성원(金成遠)·마하수(馬河秀) 등과 함께 이순신을 도왔다. 당시 명나라 장수 계금피(季金皮)와 승덕(承德) 등은 백진남의 시초(詩草)를 보고 크게 칭찬하였다고 한다.

1606년 4월 명나라에서 문장과 글씨로 이름 높았던 주지번(朱之蕃)이 사신으로 오자 대제학 유근(柳根)이 천거하여 백진남은 접반을 맡았다. 주지번은 백진남의 묵적(墨蹟)을 칭찬하며 소중히 간직하였다고 한다. 이후 백진남은 두문불출하며 후진 양성에 전념하다 1618년(광해군 10)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백진남의 저서로는 1933년 후손인 백수형(白受珩)이 간행한 『송호유고(松湖遺稿)』가 전한다.

[묘소]

백진남의 묘소는 해남군 해남읍 내사리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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