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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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錦湖津 |
영어공식명칭 | Keumhoji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변남주 |
비정 지역 | 금호도 -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 금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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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포구 |
관련 문헌 | 『대동지지(大東地志)』|『해남읍지(海南邑誌)』 |
[정의]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해남군 금호도와 별암리를 연결하였던 조선 후기와 근대의 나루.
[개설]
금호진(錦湖津)은 금호도에 있었던 작은 나루이다. 금호도에는 나루가 두 곳 있었는데, 금호도의 동쪽은 산이면 상공리, 서쪽은 별암리를 왕래할 때 이용하였다. 지금은 1993년 영암호 제방과 1995년 별암리 간 제방의 준공으로 소멸되었다.
[명칭 유래]
금호진은 나루가 있던 산이면 금호도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금호도 나루에서는 일제강점기에 별암리에서 목포 간 발동기선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해방 이후에는 목포와 화원목장 간을 왕래하는 여객선이 금호도의 산두마을에도 들리면서 금호진은 나루로서 기능이 약화되었다. 그러다가 1993년에 영암호 제방에 이어서 1995년에 별암 간 제방이 준공되면서 금호진은 완전히 소멸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금호도는 원래 소금도(蘇今島)[또는 蘓今島]라 칭하였다. 『대동지지(大東地志)』, 『해남읍지(海南邑誌)』에서 해남현의 서쪽 60리[약 23.56㎞]에 있다고 하였다. 금호나루는 마을의 동쪽과 서쪽 2곳에 있었다. 동쪽 나루는 금호마을[잡90번지]과 산이면 상공리[잡814번지] 간을, 서쪽 나루는 금호도[1117번지]와 화원면 별암리[잡973번지] 간을 연결하였다. 두 나루의 자세한 위치는『구한말지형도』와 『일제시기지형도』에서 확인된다.
[관련 기록]
『대동지지』에서는 소금도 서쪽으로 60리 떨어져 있으며 작은 나루가 있다[蘇今島西六十里有小津]고 하였다. 『해남읍지』[1872]에서는 “소금도는 서쪽으로 60리 떨어져 있으며, 산포면[지금의 산이면]에서 작은 나루를 넘어 섬의 서쪽으로 작은 바다를 건너면 황원[화원반도 일대에 있었던 옛 이름]에 이른다[蘓今島在縣西六十里 自山浦面越小津自島西涉小海至黃原].”라고 하였다. 1925년 간행된 『해남군지』에는 금호진(錦湖津)은 군의 서쪽 80리[약 31.42㎞]에 있으며 별암으로 건너가는 나루라고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