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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C020302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정

“여기가 다 논틀발틀로 산 넘어 부천까지 오갔지. 오류동 앞길은 서울에서 인천 가는 유일한 길이었어. 마차들이 쉬어 가던 데가 주막거리고.” 수궁동 토박이 권이홍[1931년생] 씨는 마을의 옛 모습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터널을 비롯한 길이 뚫리면서 지도를 펼쳐 수궁동을 보면 工자 모양으로 길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쪽으로 서울, 서쪽으로 부천에 이르는 길이 마을 위 아래로 뚫려 있다. 사통팔달(四通八達), 즉 도로가 이리저리 사방으로 통하고 있는 것이다.

[사통팔달, 사방으로 길이 났지]

수궁동이 풍치지구로 지정돼 오랫동안 변화가 없었다고 하지만 ‘길’만큼은 예외 사항이다. 부천과 궁동을 잇는 ‘작동터널’, 궁동과 신정동을 잇는 ‘궁동터널’, 오류고가차도에서 궁동삼거리에 이르는 궁골길이 모두 2000년대 들어 뚫린 것이다.

그렇다면 큰 길이 생기기 전 마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권이홍 씨는 “옛날에 교통이란 게 어디 있어. 그냥 걸어 다니고 마차타고 그랬지. 지금 궁동터널 있던 자리는 댓골고개라 불렀고 그 옆은 논밭이었어. 와룡산 넘어 부천으로 가고 그랬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마을과의 통행이 그렇게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수궁동 아래쪽 동서로 길게 뻗은 경인로는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 서울과 인천을 잇는 유일한 육로였다.

권이홍 씨는 “마차꾼들이 오가다 쉬어 가는 곳에 주막거리가 형성돼 있었지. 그렇다고 마을 위쪽까지 번화가는 아니었고, 그 인근에만 주막이 있었어. 1950~60년대까지 있었으니 오래전 일이지”라고 설명한다. 주막거리 자리에는 일신산업이 들어섰다가 지금은 동부제강이 들어서 있다.

[물 말리고 산 끊은 ‘길’, 흐름을 바꾸다]

2000년대 뚫린 마을길의 개통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01년 당시 구로구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던 변한수[1937년생] 씨는 “부천에서 궁동을 거쳐 신정동까지 뚫리는 길은 모두 서울시에서 개통한 거예요. 궁동터널은 개통 전 신정동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조금 더 늦게 공사에 들어갔죠.”라고 설명해 주었다.

2000년에 공사에 들어간 이 길들은 처음에는 와룡산 자락을 끊고 만들어졌다. 변한수 씨는 “작동터널을 뚫는다고 산을 깎아서 길을 냈더라고요. 그래서 공사 도중에 진정서를 내 ‘터널 공법’으로 짓자고 건의했죠. 그래서 길 위에 다시 콘크리트를 올리고 흙을 쌓아 나무를 심고 야생 동물이 오갈 수 있는 생태로를 만든 거예요.”라고 설명한다. 터널 공법으로 시공된 작동터널궁동터널은 2001년 완공됐다. 길은 산을 뚫고 생겨났지만 터널 위로 야생 동물과 등산객이 오갈 수 있는 통로는 보존됐다.

2004년에는 오류고가차도에서 궁동삼거리까지 1.5㎞의 궁골길이 완공됐다.

논과 궁동저수지가 있던 곳에 궁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큰 길이 놓인 것이다. 변한수 씨는 “궁동저수지를 보존하기 위해 고가 형식으로 길이 나길 바랐는데 예산 부족으로 저수지를 복개할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저수지가 반 토막 나고 지금의 궁동생태공원 연못이 된 겁니다.”라고 설명했다.

工자형 길은 마을을 교통의 요지로 만들었지만 옛 풍경을 변하게 한 주요인이 된 것이다.

[정보제공]

  • •  권이홍(남, 1931년생, 구로구 수궁동 주민)
  • •  변한수(남, 1937년생, 구로구 수궁동 주민, 궁동새마을금고 이사장, 전 구로구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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