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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명물이었던 오류골 참외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0C020102
지역 서울특별시 구로구 수궁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정

“진녹색이 돌 정도로 농익으면 아주 맛있었죠. 초록색이라 청참외라고 불렸는데 1960년대 초까지 수궁동 여름 주 수입원이 ‘오류골 참외’였어요.” 이경노[1940년생] 씨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밭에서 오류골 참외를 직접 재배한 기억을 떠올렸다. 마을의 토박이 주민들은 오류골 참외의 생김새와 맛은 물론 재배 방법까지 상세하게 기억할 정도로 ‘참외’를 동네 명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노랑참외는 설탕참외, 청참외는 꿀참외]

1970년대 이전 부천[소사] 지역에서는 ‘부천 복숭아’, ‘시흥 수박’, ‘성환 배’, ‘오류골 참외’가 가장 인기 있는 과일이었다.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부평도호부 진상품 목록에도 ‘참외 꼭지’와 ‘참외 뿌리’ 등이 기록돼 있어 부천[소사] 지역 참외 재배의 오랜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오류골 참외는 수궁동은 물론 개봉동, 고척동, 오류동, 천왕동, 항동 일대에서 재배되던 한국 재래종의 참외다. 권창호[1950년생] 씨는 “지금 우리가 흔히 보는 노랑 참외는 왜참외라고 불렀어요.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해서요. 오류골 참외는 초록색인데 크기는 노랑 참외보다 컸고요.”라고 설명한다. “노랑 참외의 단맛이 설탕맛이라면 청참외의 단맛은 꿀맛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망고의 단맛 같은 느낌이었어요.”

[서울 동대문시장, 인천 숭인동시장에 내다 판 오류골 참외]

마을 토박이인 이경노 씨는 할아버지 대부터 수궁동 일대에서 참외 농사를 지었다.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이경노 씨는 홀어머니와 참외를 재배해 시장에 직접 내다팔았다고 한다. “참외씨를 모판에 뿌리면 기름을 바른 창호지를 덮어 ‘온실’처럼 따뜻하게 만들어요. 순이 나오면 참외가 계속 자랄 수 있도록 그 부분만 창호지를 뚫어 주고요.”라며 이경노 씨가 참외 재배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참외를 수확할 때가 되면 온 식구가 밭에 나와서 땄죠. 가마에 차곡차곡 넣어 마차에 실어서 포장도 안 된 경인로를 따라 길을 나서는 거예요.” 이경노 씨 가족은 영등포, 노량진, 용산, 삼각지, 남대문을 지나 동대문시장까지 가서 참외를 팔았다. 1965년 인천까지 화물차 운행이 재개되자 동인천역 인근 숭인동시장에서도 참외를 팔 수 있게 됐다.

실제 숭인동시장에는 참외의 사투리인 ‘채미'에서 유래한 ‘채미전’이 따로 있었다. 주로 개구리참외라 불리는 청참외가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명물이었던 ‘오류골 참외’는 1990년대 초 자취를 감췄다. 1970년대 초부터 주민들이 오류골 참외 대신 개량종 참외 품종으로 대체해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저장 기간이 이틀 밖에 되지 않던 오류골 참외에 비해 개량종 참외들은 10일까지 저장이 가능하고 재배 환경에 상관없이 당도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권창호 씨는 “오류골 참외 종자를 다시 찾으려고 노력해 봐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네요. 1960~1970년대만 해도 먹고 사는 게 가장 큰 일이니 옛 것을 보존한다는 생각을 못 했으니까…….”라며 못내 아쉬워했다.

[정보제공]

  • •  이경노(남, 1940년생, 구로구 수궁동 주민)
  • •  권창호(남, 1950년생, 구로구 수궁동 주민, 수궁동 주민자치위원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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