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0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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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明善 |
영어음역 | Yun Myeongseon |
이칭/별칭 | 택중(擇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구로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남달우 |
[정의]
조선 후기 구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택중(擇中). 아버지는 사평(司評) 윤원(尹轅)이다.
[활동사항]
윤명선(尹明善)[1547~1608]은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580년(선조 13) 알성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의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좌랑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해도도사로서 유근(柳根)·윤자신(尹自新)·이정립(李廷立)을 도와 개성의 목청전(穆淸殿)에 묻어 두었던 종묘의 신주(神主)를 호위하여 평양까지 옮겼다.
이듬해 예조정랑을 거쳐 지금의 구로 지역을 통괄한 부평부사가 되었다가 무고로 탄핵을 받고 해임되었다. 다시 기용되어 장흥부사·평산부사·양주목사를 거쳐, 제용감정(濟用監正)·내섬시정(內贍寺正)을 지낸 뒤 1601년(선조 34)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 평안도재상경차관(平安道災傷敬差官)이 되었다. 이때 시위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거느리고 가서 열읍(列邑)에 폐가 많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양재도찰방으로 좌천되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병을 핑계로 사직한 뒤 한가롭게 지냈다.
[상훈과 추모]
도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