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382
한자 海南李有吉遺墟碑
영어공식명칭 Haenam Leeyugil Memorial Stone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충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3년연표보기 - 해남 이유길 유허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0년 10월 13일연표보기 - 해남 이유길 유허비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1제호로 지정
현 소재지 해남 이유길 유허비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충리 지도보기
성격 비석
관련 인물 이유길
재질
크기(높이, 너비, 두께) 250㎝[높이]|84㎝[폭]
소유자 연안이씨 시성공파
문화재 지정 번호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

[정의]

전라남대 해남군 삼산면 충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이유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개설]

해남 이유길 유허비(海南李有吉遺墟碑)이유길(李有吉)[?~?]이 임진왜란 때 명량대첩에서 세운 공과 1619년 건주(建州) 출병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해남 이유길 유허비가 세워진 해남군 삼산면 충리이유길의 출생지이다.

[건립 경위]

이유길은 17세에 임진왜란을 겪는데 병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다가 적병에 의해 목숨을 잃자 복수를 결심하고 17세의 나이로 이순신의 군대에 들어가 명량대첩에서 활약하였다. 선조는 이유길의 기상을 장하게 여겨 9품직을 제수하면서 충효라는 2자를 내렸다. 이후 명나라가 후금을 토벌할 때 조정에 출병을 요청하여 건주 출병이 결정되자 강홍립과 함께 출병하여 전투에 참전하였다. 함길 직도(直搗)에서 적의 소굴을 소탕하던 중 적의 화살을 맞고 사망하였다. 이유길은 죽은 후 1681년(숙종 7)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829년(순조 29)에는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1859년(철종 10) 충의(忠義)라는 시호를 받았다. 1893년(고종 30) 출생지인 해남군 삼산면 충리해남 이유길 유허비가 건립되었다. 전라병마절도사 이정규(李廷珪)가 비문을 쓰고, 송시열의 9세손이자 경영관·서연관·서강원자의를 겸한 송병선(宋秉璿)이 찬하였다.

[위치]

해남 이유길 유허비해남군 삼산면 충리에 있다.

[형태]

해남 이유길 유허비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비각과 삼문이 설치되어 있다. 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유허비는 높이 250㎝,폭 84㎝로 화강암의 재질로 만들어졌다.

[금석문]

해남 이유길 유허비는 비석 앞면에 “황명심하순절 본조증영의정겸세자사 충의공이선생유허비(皇明深河殉節 本朝贈領議政兼世子師 忠毅公李先生遺墟碑)”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해남 이유길 유허비는 비각 옆에 비석을 건립할 당시의 유사 3명을 새긴 비 1기가 있고, 앞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해남 이유길 유허비는 2000년 10월 13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해남 이유길 유허비는 여러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유길의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 주며, 해남군에서 제1호로 지정된 향토문화유산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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