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법군고놀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196
한자 陣法軍鼓놀이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놀이 개시 시기/일시 1592년~1594년 - 진법군고놀이 서산대사가 풍물을 진법으로 활용하면서 유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97년 - 진법군고놀이 미황사 군고단 운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5년 - 진법군고놀이 해남군고보존회 결성
성격 풍물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전승되는 풍물 연희.

[개설]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는 풍물을 군고라고 부른다.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풍물을 진법으로 활용하면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이 전하고, 해남 지역의 주민들도 풍물이 군고라 불리는 이유를 임진왜란이나 서산대사와 관련지어 설명한다.

군고는 기능 면에서 일반적인 풍물과 다르지 않다. 마을마다 당굿과 마당밟이, 판굿 등을 행하는데, 이때 연행하는 풍물을 군고라고 부를 뿐이다. 다만, 풍물이 지역에 따라 각각의 특징이 있듯이, 해남 지역 군고의 판굿 절차가 군대의 전술 훈련을 연상할 만큼 진법 중심으로 전개되고 각각의 절차가 군사 훈련의 과정으로 의미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해남 지역의 군고 연희를 진법군고놀이라 한다.

진법군고놀이의 연행은 마을마다 다르다. 전통적으로 풍물은 마을을 전승 단위로 하기 때문에 마을마다 상쇠의 계보가 있고, 마을마다 연행 문법을 형성한 가락과 절차가 달리 존재한다. 다만, 해남 지역에서는 송지면 산정리를 중심으로 한 군고단의 풍물이 보존회 등을 결성하여 지역 풍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산정리의 군고가 오래전부터 지역에서 이름을 얻었고 그 후예들이 군고의 전통을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1897년 송지면에 있는 미황사에서 사찰의 중창 불사를 위해 인근 다도해 일대로 걸립을 다녔고 이때 산정리를 중심으로 지역의 군고잽이들을 규합하여 미황사 군고단을 운영하였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과거부터 산정리의 군고가 예능적으로 뛰어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연원]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가 의승군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할 때 풍물을 군대 진법이자 군악으로 활용하면서 군고의 전통이 성립되었다는 유래가 전한다. 또한 전쟁에서 싸움을 하기 전에 진을 짜고 사기를 높이는 데에 쓰였던 춤과 음악으로서 승병들이 즐기던 것이 민간에 전파된 것이라고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사찰의 절 걸립과 관련된 『설나규식(設儺規式)』이라는 문서가 전하고, 군고의 절차를 기록해 놓은 『군고청령급진법(軍鼓聽令及陣法)』과 『농악대 상식서』 등의 문서가 전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진법군고놀이의 연희자를 군총이라고 부른다. 군총에는 기수, 치배, 잡색이 있다. 기수는 두 명으로, 영기(令旗)를 들고 다닌다. 치배는 나발 한 명, 새납[태평소] 한 명, 꽹과리 일곱 명, 징 두 명, 장구 네 명, 북 열 명, 소고 다섯 명 이상 등으로 구성된다. 잡색은 대포수 한 명, 집사 한 명, 창부 두 명, 조리중 한 명, 무동 한 명, 농부 한 명으로 구성된다. 군총의 구성은 연행 환경에 따라 유동적이다.

[놀이 방법]

군고단의 연행 내용은 당굿, 마당밟이, 밤굿 등이다. 당굿[당산굿]은 ‘들당산-당굿-영굿-날당산’의 절차로 진행되고, 마당밟이[지신밟기]는 ‘질굿[길굿]-문굿-샘굿-정지굿-외양간굿-마당굿’ 등의 절차로 진행되며, 밤굿은 ‘모임굿-질굿-문굿-당맞이굿-진갱기굿-영산다드래기-낚아채기-아궁굿-도적잽이-호허굿-구정놀이-난장-파작굿’ 등의 절차로 진행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군고는 민속 의례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전승된다.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미의 당굿, 가정의 액막이와 축원을 위하여 행하는 마당밟이, 마을공동체 제사 기간 마지막에 행하는 밤굿 등이 연행의 실제이기 때문이다.

[현황]

진법군고놀이는 1995년 해남군고보존회[1992년 산정12체군고보존회에서 개칭]를 결성한 이래 2018년 현재까지 공연과 전승 활동을 벌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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