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740
한자 韓壽童
영어공식명칭 Han Soodong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종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한수동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40년연표보기 - 한수동 사망
활동지 전라남도 화순군
성격 국악인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국악인.

[개설]

한수동(韓壽同)[1895~1940]은 해남 출신으로,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살면서 활동한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이다.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한숙구(韓淑求)[1865~?]의 아들이다. 역대 가야금산조 명인 가운데 첫손에 꼽히고 있다.

[활동 사항]

한수동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서 가야금·풍류 및 산조를 배웠다. 천재적인 소질이 있어 모든 악기에 능하였고, 당대 판소리 8명창의 한 명으로 명성이 높았던 송만갑(宋萬甲)[1865~1939]이 가야금 신동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한번은 송만갑이 한수동에게 가야금산조를 청했는데, 한수동이 가야금 음률에 심취하여 진양조를 연주하자 그만 그치게 하고 듣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뒷부분을 마저 듣자고 말하였으나 송만갑은 “진양조 들었으면 다 들었지.”라며 한수동의 재주를 귀히 여겼다고 한다. 한수동은 송만갑과 함께 협률사(協律社)에 소속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하였다고 전한다.

1930년대 화순의 거부인 오판기(吳判基)가 풍류를 즐겨 집안에 풍류방을 꾸미고 많은 악사를 불러들여 풍류를 즐겼는데,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오판기 풍류방’이라고들 하였다. 한수동은 가야금 명인 정남옥(鄭南玉)과 박경석(朴景錫), 피리 명인 정학기(鄭學基)와 오진석(吳晋錫), 대금 명인 한주환(韓周煥) 등과 같이 오판기 풍류방의 풍류객으로 참가하였다.

한수동은 음악성이 높은 자신만의 가야금산조를 만들었으나 1940년 마흔다섯 살에 사망하여 전승이 끊어지는 바람에 현재 음률은 전하지 않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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