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705
한자 尹玉夏
영어공식명칭 Yun Okha
이칭/별칭 윤병하(尹秉夏)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 12월 07일연표보기 - 윤옥하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4월 - 윤옥하 해남공립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04월 06일 - 윤옥하 1919년 해남 독립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29년 11월 15일연표보기 - 윤옥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윤옥하 대통령표창 수훈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해남공립보통학교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향교길 20[수성리 105]지도보기
활동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1919년 4월 6일 해남 독립 만세 운동 참가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윤옥하(尹玉夏)[1901~1929]는 1901년 12월 7일 해남군 화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윤병하(尹秉夏)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윤옥하는 일제 식민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윤옥하해남보통학교 기숙사 방에서 김규수(金奎秀)·김한식(金漢植)·신건희(申健熙)··임영식(任永植) 등과 함께 뜻을 같이하기로 먼저 결의하였다. 1919년 4월 2일 김규수·김한식·임영식은 기숙사 생도 윤준하(尹俊夏)·이사국(李士國) 등을 동지로 모았고, 4월 3일에는 김영휘(金永輝)·김명곤(金明坤)·이재실(李在實)·이준탁(李準鐸) 등이 합류하였다.

1919년 4월 5일에는 김명곤·김규수·신건희·이재실 등이 해남보통학교 기숙사에 모여 1919년 4월 6일 해남읍 장날을 이용해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준비하였다. 김규수·윤백인 등은 돈을 모아서 천과 물감 등을 구입하였으며, 김성암·윤준하 등과 함께 천으로 만든 태극기 80개와 작은 태극기 8개, 종이 태극기 80여 개를 만들었다. 신건희는 독립 선언 광고문을 기초하고, 윤옥하·김규수·임영식 등은 이를 등사하였다.

1919년 4월 6일 오후 1시경 해남읍 장날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윤옥하 등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고, 시장에 있던 군중 1,000여 명도 독립 만세를 큰소리로 외치며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 일로 윤옥하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윤옥하는 1929년 11월 15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한민국 정부는 윤옥하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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