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710
한자 李在實
영어공식명칭 Lee Jaesil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8년 3월 27일연표보기 - 이재실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19년 4월 - 이재실 해남공립보통학교 재학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 이재실 해남읍에서 독립 만세 운동 참가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58년 06월 03일연표보기 - 이재실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이재실 대통령표창 수훈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종면 -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소죽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소죽리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해남공립보통학교 -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향교길 20[수성리 105]지도보기
활동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222호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3]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1919년 4월 6일 해남읍 독립 만세 운동 참가

[정의]

일제강점기 해남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재실(李在實)[1898~1958]는 1898년 3월 27일 해남군 송지면 소죽리에서 태어났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4월 6일 해남 지역 최초의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활동 사항]

해남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은 해남읍에 있던 해남공립보통학교 생도들에 의해 처음 전개되었다. 해남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재실은 일제 식민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김규수(金奎秀)가 해남보통학교 기숙사 방에서 윤옥하(尹玉夏)·김한식(金漢植)·신건희(申健熙)·임영식(任永植) 등과 함께 뜻을 같이하기로 먼저 결의하였다. 1919년 4월 2일 김규수·김한식·임영식은 기숙사 생도 윤준하(尹俊夏)·이사국(李士國) 등을 동지로 모았고, 4월 3일에는 이재실을 비롯한 김영휘(金永輝)·김명곤(金明坤)·이준탁(李準鐸) 등이 합류하였다.

1919년 4월 5일에는 이재실·김명곤·김규수·신건희 등이 해남보통학교 기숙사에 모여 1919년 4월 6일 해남읍 장날을 이용해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준비하였다. 김규수·윤백인 등은 돈을 모아서 천과 물감 등을 구입하였으며, 김성암·윤준하 등과 함께 천으로 만든 태극기 80개와 작은 태극기 8개, 종이 태극기 80여 개를 만들었다. 신건희는 독립선언 광고문을 기초하고, 윤옥하·김규수·임영식 등은 이를 등사하였다.

1919년 4월 6일 오후 1시경 해남읍 장날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이재실 등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고, 시장에 있던 군중 1,000여 명도 독립 만세를 큰소리로 외치며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 일로 이재실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6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4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재실은 1958년 6월 3일 사망하였다.

[묘소]

이재실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3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제-222호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7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재실의 공적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9.14 오류 수정 [개설] [1898~1929]는 1958년 3월 27일->[1898~1958]는 1898년 3월 27일
이용자 의견
용** 개설부분에 1929년 사망을 1958년으로 수정 요망
  • 답변
  • 디지털해남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청하신 사항을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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