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65
한자 鄭戶長
영어공식명칭 Cheong Hoja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윤섭

[정의]

조선 전기 호장직을 세습하며 해남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해남정씨들을 일컫는 명칭.

[개설]

정호장(鄭戶長)은 고려 때부터 호장(戶長)직을 세습해 온 해남정씨(海南鄭氏) 집안의 인물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해남정씨는 조선 전기 강력한 향권(鄕權)을 바탕으로 금남(錦南) 최부(崔溥),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 임수(林秀) 등을 사위로 삼아 후원함으로써 이들 가문이 해남 지역을 근거지로 재지사족으로 성장하여 중앙 정계에 진출하는 데 일조하였다.

[가계]

해남정씨의 시조는 정원기(鄭元琪)이다. 정원기의 손자인 정재전(鄭在田)은 아들 정문명(鄭文明)을 두었으며, 정문명은 정귀감(鄭貴瑊)과 정귀영(鄭貴瑛) 형제를 두었다. 정문명은 임수를 사위로 삼았으며, 정귀감과 정귀영은 최부윤효정을 사위로 삼았다. 해남정씨는 정언홍(鄭彦洪)과 정언식(鄭彦湜) 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여 한때 명망을 얻기도 하였으나 직계 자손이 번성하지 못하고 본관마저 없어져 현재는 초계정씨(草溪鄭氏) 족보나 가승 등을 통해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활동 사항]

해남정씨는 대대로 호장직을 세습하며 해남 지역에서 강력한 향권을 행사하였다. 정재전(鄭在田)은 진도와 해남의 행정구역을 통합한 1412년(태종 12) 관아와 객사를 건립하는 데 물자를 지원하여 향역을 면제받았고, 해진군(海珍郡)이 다시 분군되어 독립할 때에도 노비 62구(口)를 바쳐 향리역을 면제받을 정도로 당시 경제적 위상이 컸다. 『해남윤씨문헌』의 나두동(羅斗冬)이 찬한 「보략」에 따르면 해남정씨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까지 대대로 호장직을 세습한 가문이며 해남 일대의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한 부호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후기 해남윤씨 가문의 인물들을 기록한 『당악문헌(棠岳文獻)』에는 해남정씨들이 금강산 석봉 아래에 자리를 잡고 살았으며, 이곳에서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귤정(橘亭) 윤구(尹衢),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과 같은 인물들이 등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해남정씨는 직계자손들이 번창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외손들이 관직에 나아가고 번창할 수 있도록 경제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묘소]

해남군 해남읍 관동리해남정씨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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