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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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燕湖津 |
영어공식명칭 | Yeonhoji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변남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63년 - 연호진 여객선연호침몰사고로 여객선 운항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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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 지역 | 연호진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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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나루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호리에 있었던 나루.
연호진(燕湖津)은 해남군 황산면 인근에서 목포를 오가는 발동기선 나루였다. 1920년 무렵 운영이 되어 1963년 여객선연호침몰사고가 발생하면서 중단되었다. 연호진 바로 앞에는 연자도라는 바위섬이 있으며 여기에는 연자랑(燕子娘)설화가 전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고려 때 중국 남경 가는 사신이 바다를 건널 때 연자도에 머물렀다가 남경으로 떠났다. 그런데 연자랑이라는 낭자가 연자도에서 남경 간 사신을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자 바다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후로 사람들은 연자도를 연자각씨섬이라 칭하였다고 한다[燕子島在縣西二十里 四面石壁距洲數里聚沙成路 諺傳麗朝南京使臣渡海時留燕子娥於島中期以槎回更見娥待而不還乃投水死後人名其島曰燕子閣氏島].
연호진은 발동기선이 등장하는 1920년대에 시작되어 1963년 여객선연호침몰사고가 발생하기까지 운영되다가 중단되었다. 1963년 1월 18일 오전 10시경 목포 허사도 앞 해상에서 해남 연호리와 목포간을 운항하는 여객선 연호가 침몰하였다. 이 사고로 141명의 승객 중 140명이 사망하고 곡물 150가마니가 피해를 입었다. 설을 준비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탔는데 86명의 초과 승선에 폭풍으로 인한 결과였다.
1995년 금호호 간척 제방 준공으로 인하여 연호진 물길이 차단되었다.
연호진 선창은 마을 서쪽의 갯고랑에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해남군지』에 따르면 “군의 서쪽 30리[약 11.78㎞]에 있으며 목포를 발동기로 간다.”라고 기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