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171
한자 松山里[玉泉面]
영어공식명칭 Songsan-ri[Okcheon-myeon]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소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 개설
송산리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 지도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5.647㎢
가구수 165가구
인구[남/여] 287명[남자 141명|여자 146명]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송산(松山)은 ‘솔뫼’의 한역으로, 마을이 소나무가 많은 산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영암군 옥천종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06년(광무 10) 해남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고리, 남촌리, 화촌리의 각 일부와 학하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옥천면 송산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송산마을, 마고마을, 화촌마을, 남촌마을, 향촌마을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송산마을은 400여 년 전 경주김씨가 마을에 터를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영춘리 만석등의 경주김씨 묘가 입향 사실을 말해 준다. 한편 삼당시인 중의 한 사람인 옥봉 백광훈이 장흥에서 이주하여 수원백씨 터전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1719년에 호열자가 만연하자 주민 상당수가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마고마을은 송산마을의 일부였는데 분리되었다고 한다. 하동정씨와 청주김씨가 입향하여 정착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내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마고마을은 1960년대 마고동, 연화동, 옹골을 합하여 만들어졌다. 화촌마을은 주변에 고인돌이 산재하는 것으로 보아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입향조는 1100년에 자리잡은 광산김씨로 전해진다. 남촌마을은 보성안씨가 입향하여 터전을 일구었다. 마을 뒷산의 보성안씨 묘를 통해 입향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후 1504년경에 광산김씨가, 1560년경에 수원최씨가 이거하였다. 향촌마을은 100여 년 전에 시장이 들어섬으로써 이루어졌다.

[자연환경]

송산마을은 남향이고, 북쪽으로 구릉이 둘러싸고 있어 북풍을 막아 주어 안온하고, 여름에는 마을 앞 들판을 타고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농토가 비옥하고 쌀이 밥맛 좋기로 유명하다. 마고마을은 만대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남촌마을은 산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가옥은 산자락에 흩어져 있다. 예전에는 남촌, 옥녀동, 죽판동으로 이루어진 규모 있는 마을이었으나, 1954년 백호제가 만들어지면서 죽판동과 마을 농토 일부가 수몰되어 규모가 줄어들었다.

[현황]

송산리(松山里)[옥천면(玉泉面)]는 북쪽으로 영춘리, 동쪽으로 백호리, 청신리, 남쪽으로 백호리, 삼산면 상가리, 서쪽으로 해남읍 신안리, 해남읍 연동리와 접하고 있다. 2018년 10월 31일 현재 면적은 5.647㎢이며, 송산리, 마고리, 화촌리, 남촌리, 향촌리의 5개 행정리에 165가구, 287명[남자 141명, 여자 14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송산리의 주 소득원은 벼농사이며, 특작물로 딸기, 밤호박, 녹차, 양파, 오이 채종포, 파프리카, 토마토 등이 있다. 송산마을과 화촌마을 근방에서 나는 토하젓이 유명하였으나 독한 농약 때문에 지금은 토하(土蝦)[새뱅잇과의 민물 새우]가 거의 멸종 상태이다. 남촌마을에는 귀농한 농가들이 중심이 되어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지역 귀농가들과 ‘해남댁 삶바꿈터’라는 친환경 장터를 열어 생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송산마을 백옥봉 사당(白玉峯祠堂)에는 한석봉과 백옥봉의 친필 등 목판이 보존되어 있다. 마고마을에서 북서쪽으로 200m 정도 떨어진 저평한 구릉 정상부에 3기의 고인돌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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