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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263
한자 右水營城-右水營-
영어공식명칭 Usuyeong Castle and the People of Usuye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6년 07월 11일 -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문화마을에서 정춘원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7년 -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6년 -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 관련 지명인 해남 전라우수영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5호로 지정
관련 지명 우수영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서상리 지도보기
채록지 문화마을 -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지도보기
성격 인물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이순신|김억추|이억기
모티프 유형 충|효|애향심|명량대첩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우수영 성과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해남군 문내면에 있는 우수영(右水營) 성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명량대첩(鳴梁大捷)[1597]을 승리로 이끈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인 우수영을 지역 주민들이 충(忠)과 효(孝)의 정신으로 지켜 내었다는 내용이다.

[채록/수집 상황]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은 2016년 7월 11일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문화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정춘원[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상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5호로 지정된 해남 전라우수영(海南全羅右水營)은 군사적 요충지이며,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이 이끈 수군이 명량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둔 곳이다. 우수영 성은 동문, 서문, 남문, 북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의 정문으로는 상여가 나갈 수 없기 때문에 남쪽과 서쪽에 상여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따로 만들었는데, 상여가 나가는 문을 ‘시구문’이라 부른다.

우수영 일대의 사람들이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은 임진왜란 때의 무신 이순신이억기(李億祺)[1561~1597], 그리고 김억추(金億秋)[1548~1618]이다. 이순신은 조선을 대표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억기와 김억추는 충신임에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억기는 임진왜란 때 전라우도수사(全羅右道水使)가 되어 이순신을 도와 일본군과 싸웠다. 하지만 칠천량해전(漆川梁海戰 )[1597]에서 일본군에게 패하자 패전한 장수는 살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억추는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을 따라 대승을 이룬 장수이다. 1597년 9월 16일 이순신이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두고 다음 날 전열을 정비하기 위하여 전라남도 무안의 다대포로 장소를 옮겼다. 그런데 이순신우수영을 비운 사이에 남아 있던 일본군들이 들어와 우수영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이때 우수영 주민들도 많은 피해를 당하였는데, 주민들은 슬픔을 이겨 내고 충과 효, 그리고 애향심으로 성을 복원하는 데 앞장섰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의 모티프는 ‘충’, ‘효’, ‘애향심’, ‘명량대첩’ 등이다. 역사적 인물의 사실적 행적을 밝히는 인물 설화인데, 기록에 남지 않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이억기, 김억추의 행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우수영 성과 우수영 사람들」에서는 나라를 구한 역사적 인물들의 영웅적 면모와 함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우수영을 지켜 내기 위해 노력한 지역 주민들의 애향심을 강조하고자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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