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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54
한자 任謹
영어공식명칭 Im Geun
이칭/별칭 백헌(伯軒)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수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94년연표보기 - 임근 출생
몰년 시기/일시 1549년연표보기 - 임근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89년 - 임근 예양사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799년 - 임근 묘갈명비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46년 - 임근 운곡사에 배향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5년 - 임근 묘갈명비 해남군 향토유적 제30호로 지정
사당|배향지 운곡사 -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678 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장흥(長興)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효자.

[가계]

임근(任謹)[1494~1549]의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백헌(伯軒)이다. 고려 전기의 문신인 정경공(貞敬公) 임의(任懿)의 후손으로, 성균관 생원이었던 참봉 임서규(任瑞珪)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임희진(任希璡)이 아들이다.

[활동 사항]

임근은 벼슬에 뜻이 없어 일찍이 과거 응시를 포기하고 오로지 위기학(爲己學)에 전념하였다. 위기학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고도 하며, 자신의 인격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말한다. 임근은 효성이 지극하여 늙은 어머니의 봉양에 성심을 다하였으며, 자신이 고령이 될 때까지 노모를 봉양하면서 게으름을 피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임근의 효행은 마침내 왕에까지 전해졌고, 순능참봉(順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임근의 효행은 ‘효자 임근 묘갈명비(孝子任謹墓碣銘碑)’에 기록되어 있다. 비문에 따르면 뛰어난 효행으로 산 노루가 부엌에 뛰어들고, 겨울철에 죽순이 자라나 어머니 상에 올렸으며 호랑이가 호위하였다고 한다.

[상훈과 추모]

임근의 위패는 현재 계곡면 당산리운곡사(雲谷祠)에 모셔져 있다. 원래 1789년 마산면 송석리 소재 예양사(汭陽祠)에서 임발영(任發英)[?~?], 임충간(任忠幹)[1573~1645]과 함께 배향되었으며, 1946년 예향사에서 분단되어 운곡사로 옮겨 왔다. 현재 운곡사에는 1명의 효자와 6명의 임진왜란 공신[임근, 임희진, 임자영, 임영길, 임천감, 임석, 임준] 등 총 7위를 배향했으며, 2013년 임충식 전 국방부 장관이 추가로 배향되었다.

1799년 계곡면 당산리효자 임근 묘갈명비가 세워졌다. 비문은 조홍진(趙弘鎭)[1743~1821]이 짓고, 글씨는 8대손 임방한(任邦翰)이 썼다. 건립 연대가 오래된 점과 호남어사의 천거 등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 2015년 해남군 향토유적 제30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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