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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614
한자 柳成春
영어공식명칭 Ryu Seongchun
이칭/별칭 천장(天章),나옹(懶翁),성은(城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윤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13년 - 유성춘 생원시와 진사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14년 - 유성춘 별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519년 - 유성춘 기묘사화로 인해 파직
출생지 해남 - 전라남도 해남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선산(善山)
대표 관직 춘추관기사관|이조정랑

[정의]

조선 전기 해남 출신의 문신.

[개설]

유성춘(柳成春)[?~?]은 해남 출신의 문신으로 윤구(尹衢)·최산두(崔山斗)와 함께 호남삼걸(湖南三傑)로 일컬어졌다.

[가계]

유성춘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자는 천장(天章), 호는 나옹(懶翁)·성은(城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양수(柳陽秀), 할아버지는 유공준(柳公濬), 아버지는 유계린(柳桂隣)이다. 어머니는 최부(崔溥)[1454~1504]의 딸 나주최씨(羅州崔氏)이다. 대사간 유희춘(柳希春)의 형이다.

[활동 사항]

유성춘은 1513년(중종 8)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춘추관기사관을 거쳐 이조정랑에 이르렀으나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연좌되어 좌의정 안당(安塘), 좌찬성 최숙생(崔淑生)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그 뒤 유성춘은 동갑이자 인척인 윤구를 비롯해 최산두 등과 학문적으로 교유하였다.

유성춘은 아버지를 모시고 작은 서재에서 공부하였는데, 서재를 게으른 집이란 뜻의 ‘나재(懶齋)’라고 이름 붙였다 한다. 유성춘은 1522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전라도 화순 동복에 살던 최산두가 평소 존경한 유성춘의 아버지 유계린에게 인사하러 왔으나 유성춘이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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