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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90
한자 金石文
영어공식명칭 Epigraph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희태

[정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 있는 석재와 금속류 등에 기록된 문자.

[개설]

금석문(金石文)은 글자 그대로 쇠나 돌에 표기된 문자를 말하는데, 석비나 암각명문(巖刻銘文)[바위 따위에 새긴 글] 등 재료가 돌인 경우가 가장 흔하고 동종이나 금고 등 금속류 법구나 도구에 기록한 경우도 있다. 금석문의 범위를 넓히면 목재나 토기, 기와, 도자기 따위에 기록된 문자도 포함된다. 전라남도 해남 지역의 대표적 금석문은 조선시대의 명량대첩비를 들 수 있고 매향비나 암각 매향문도 특징적이다. 탑산사명 동종[보물 제88호]의 명문도 중요한 금석문이다.

[해남 지역 금석문 조사 현황]

해남군의 금석문에 대한 조사는 1986년 『해남군의 문화유적』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불교 유적 편과 유교 유적 편에서 조사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불교 유적은 대흥사 탑비군 27기, 표충사 사적비와 서산대사 기적비, 미황사 탑비 6기, 동종과 금구 6구, 미황사 건물 상량기 등 41건이 조사되었다, 그런데 양식적인 특징만 설명한 것이 일반적이다. 유교 유적 편에서는 탑산사명 동종, 매향암각문, 해남 명량대첩비, 사적비 명량대첩비각 입구 공적비군 30기, 대흥사 경내 비석군 27기, 대흥사 사적비, 표충사 건사사적비,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 화원 신덕 공적비군 9기, 해남읍 서성리 공적비군 17기 등이 조사되어 있다. 모두 90건이다.

해남의 금석문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해남지방 금석문 대계』에 따르면 해남읍 31건, 문내면 41건, 화산면 6건, 화원면 14건, 현산면 5건, 송지면 15건, 북평·북일면 5건, 삼산면 25건, 마산·화산·산이면 12건, 계곡·옥천면 9건으로 모두 163건이 조사되었다.

[해남 지역 금석문]

1. 사적비(事蹟碑)

사적비는 역사적 현장이나 특정 건조물의 건립 현장에 그와 관련된 사실을 전달하고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건립된다. 해남군의 대표적인 사적비로는 해남 명량대첩비(海南鳴梁大捷碑)[보물 제503호, 688년 건립]를 들 수 있다.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의 명량대첩을 기록한 비이다. 삼산면대둔사 사적비(大芚寺事蹟碑)[1744년], 서산대사 표충사 기적비(西山大師表忠祠紀蹟碑)[1791년], 표충사 건사 사적비(表忠祠建祠事蹟碑)[1792년], 송지면미황사 사적비(美黃寺事迹碑)[1692년], 옥천면에 옥봉선생 백공유허비(玉峯先生白公遺墟碑), 해남읍에 민충정공 미산서원 유허비(閔忠貞公眉山書院遺墟碑)[1929년] 등이 있다.

2. 기공비(紀功碑)

기공비는 역사적 인물의 업적을 기리거나 중요한 사실을 기념하여 세우는 것이다. 해남의 대표적 기공비로는 삼산면에는 이유길 유허비(李有吉遺墟碑)[1893년], 해남읍에는 통제사 충무이공순신지비(統制使忠武李公舜臣之碑)[1894년], 현산면에는 백방교중수기비(百房橋重修記碑)[1909년], 화산면에는 신선생백파 소요대(申先生白坡逍遙臺)[1852년], 효자 밀양박공필양 기적비(孝子密陽朴公弼瀁紀蹟碑)[1890년], 고효자 유참봉정열 유혜비(故孝子劉叅奉正烈遺惠碑)[1852년] 등이 있다.

3. 탑비

탑비는 승려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기공비와 성격이 비슷하고 묘도문자(墓道文字)[묘비, 묘표 등에 새긴 글자]로도 볼 수 있는데, 해남군에는 대흥사미황사에 고승석덕의 탑비가 많이 있다. 탑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대흥사해남 대흥사 청허당 휴정대사비(海南大興寺淸虛堂休靜大師碑)[1647년]이다. 한국 불교사에서 서산대사의 위상과 관련되고 건립 연대도 오래되었다. 삼산면 대흥사의 청허당 서산대사비를 비롯하여 해운당 경열대사비(海運堂敬悅大師碑)[1814년], 해남 대흥사 풍담당 의심대사비(海南大興寺楓潭堂義諶大師碑)[1692년], 취여당 삼우대사비(醉如堂三愚大師碑)[1684년 이후], 화악당 문신대사비(華嶽堂文信大師碑)[1707년 이후], 월저당 도안대사비(月渚堂道安大師碑)[1739년], 설암당 추붕대사비(雪巖堂秋鵬大師碑)[1739년], 환성당 지안대사비(喚醒堂志安大師碑)[1822년], 상월당 새봉대사비(霜月堂璽葑大師碑)[1782년], 호암당 체정대사비(虎巖堂體淨大師碑)[1822년], 함월당 해원대사비(涵月堂海源大師碑)[1773년], 만화당 원오대사비(萬化堂圓悟大師碑), 연담당 유일대사비(蓮潭堂有一大師碑)[1803년], 현해당 모윤대사비(懸解堂慕潤大師碑)[1810년], 정암당 즉원대사비(晶巖堂卽圓大師碑), 완호당 윤우대사비(玩虎堂倫佑大師碑)[1857년], 연파당 혜장대사비(莲坡堂惠藏大師碑)[1855년], 초의당 의순대종사비(艸衣堂意恂大宗師碑)[1871년], 초의당 의순대종사비(艸衣堂意恂大宗師碑], 철선당 혜즙대사비(鐵船堂惠楫大師碑)[1876년], 월초당 창준대화상비(月初堂昌準大和尙碑)[1926년]가 있다. 송지면 미황사에 감파당 한덕대사비(緘坡堂德閑大師碑)[1737년], 벽하당 대우대사비(碧霞堂大愚大師碑)[1764년], 송파당 각훤대사비(松坡堂覺喧大師碑)[1764년], 설봉당 회정대사비(雪峯堂懷淨大師碑)[1739년], 금하당 우한대사비(錦河堂優閑大師碑)[1764년], 낭암당 기연대사비(朗巖堂示演大師碑)[1840년] 등이 있다.

4. 송덕비(頌德碑)

송덕비는 어느 지역이건 현전하는 금석문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송덕비를 비롯하여 선정비(善政碑),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만세불망비(萬世不忘碑), 청덕선정비(淸德善政碑), 청덕선정 만고불망비(淸德善政萬古不忘碑), 거사비(去思碑), 만세송덕비(萬世頌德碑), 구휼비(救恤碑)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된다. 향교에서는 따로 흥학비(興學碑)를 세워 수령의 공덕을 기리기도 한다. 대부분의 송덕비는 형식적인 관행에 따라 세워지며, 재임 기간에 세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해남군에는 해남읍에 해남현감, 문내면에 전라우수사, 화원면에 감목관, 그리고 수군진이 있던 곳에는 만호를 기리는 송덕비가 일반적이다. 어사나 관찰사, 순찰사, 우후 등의 송덕비도 있다. 해남읍에는 현감 유공상재 청덕선정비(縣監 柳公尙載淸德善政碑)[1692년] 등 현감·군수 11기, 관찰사·순찰사 3기, 어사 3기 등 17기가 있다. 문내면에는 전라우수영이 있어 송덕비가 많다. 수군절도사 14기, 관찰사 3기, 현감·군수 3기, 수상국[수군통제사]·어사·우후 10기 등 모두 30기가 있다. 화원면에는 감목관 8기, 관찰사 1기, 어사 1기, 군수 1기 등 모두 14기가 있다.

5. 묘도문자(墓道文字)

묘도문자는 묘소 옆에 묘 주인의 일생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이다. 묘표(墓表), 묘갈명(墓碣銘), 묘비명(墓碑銘), 신도비명(神道碑銘) 따위가 새겨진다. 고승 석덕의 탑비도 묘도문자에 포함될 것이지만 해남 지역의 특성상 항목을 달리하여 설명하였다. 이들 명문류는 서문과 함께 쓰는 것이 일반적이고 비명병서(碑銘幷序)로 표기된다. 해당 인물의 행적과 관련해서는 명문이 중요하겠지만, 후대 기록물로서는 서문이 역사적 사실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계곡면에는 효자 임근 묘갈명비(孝子任謹墓碣銘碑)[1799년]와 석천 임억령묘표(石川林億齡墓表), 마산면에는 강릉대도호부사묘비(江陵大都護府使墓碑), 통덕랑 원주이공 이정지묘비(通德郞原州李公而禎之墓碑), 행군자감직장 이공순지묘비(行軍資監直長李公珣之墓碑), 절충장군 행부호군 어공선진지묘비(折衝將軍行副護軍魚公善進之墓碑)[1771년], 성균생원 순천김공 효손신도비(成均生員順天金公孝孫神道碑)[1919년], 행호조참의 순천김공덕부묘갈(行戶曹參議順天金公德溥墓碣)[1919년], 옥천면에는 옥봉선생 백공 휘광훈신도비(玉峯先生白公諱光勳神道碑)[1965년], 사복판관 증병조판서 정운신도비명병서(司僕判官贈兵曹判書鄭運神道碑銘幷序)[1865년], 예양군 임발영 묘갈명(汭陽君任發英墓碣銘)[1918년], 해남읍에는 성균생원 윤공휘효정지묘비(成均生員尹公諱孝貞之墓碑), 현산면에는 증이조판서 시충헌 윤공신도비명(贈吏曹判書諡忠憲尹公神道碑銘) 등이 있다.

6. 정려비(旌閭碑)

조선왕조에서는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기에 삼강오륜 등에 따르는 윤리 의식을 실천한 충효열(忠孝烈) 인물의 행적을 기려 정려비를 세웠다. 대표적인 비로는 계곡면에 효자 온양방공 두선지비(孝子溫陽房公斗善之碑)[1938년], 문내면에 효자 조군석남 감응비병병서(孝子曺君石南感應碑銘幷序)[1863년],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조석창 정효기은비(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曺錫昌旌孝紀恩碑)[1876년], 산이면에 증가선대부 병조참판 김해김공종문처 원주이씨지열비(嘉善大夫兵曹參判金海金公宗文妻原州李氏之烈碑)[1924년], 현산면에 임부인효열지비(林夫人孝烈之碑)[1926년], 화산면에 유인 장수황씨효열비(孺人長水黃氏孝烈碑)[1884년] 등이 있다.

7. 암각 매향문

해남군 금석문 가운데 특이한 것으로 암각 매향문이 있다. 일반적으로 금석문은 석재를 다듬어 비석 형태로 세우지만, 바위면에 바로 새기는 경우도 있다. 문내면전라우수영 성벽이나 대흥사 북미륵암 석탑 옆에도 암각명문이 있다. 마산면해남 맹진리 암각 매향비(海南孟津里巖刻埋香碑)[전라남도 기념물 제137호]는 향나무를 민물과 갯물이 만나는 지점에 묻는 매향 의식을 하고 행사의 동기와 장소, 시기, 관련 집단 등을 기록한 것이다. 향도(香徒) 58명과 마을 주민 100명이 함께 모여 매향을 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406년(태종 6)에 새긴 것이다.

8. 금속류 금석문

금속류 금석문으로는 동종, 법구 등을 들 수 있다. 해남군의 대표적인 동종 금석문은 탑산사명 동종(塔山寺銘銅鍾)[보물 제88호]이다. ‘계사시월일탑산사화향도(癸巳十月日塔山寺火香徒)’라는 음각명과 ‘만력이십일년계사십이월일(萬曆二十一年癸巳十二月日)’이라는 점각 명문이 있다. 고려 후기 계사년과 조선 후기 계사년 기록이다. 대흥사 청신암에 있는 동종에는 원래 진불암(眞佛菴)에 두려고 1709년(숙종 35)에 주조하였다는 명문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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