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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0477
한자 海南蓮塘里彌勒佛
영어공식명칭 Haenam Yeondangri Maitreya
이칭/별칭 해남 연당리 석조보살입상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 635-5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황호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고려 중기 - 해남 연당리 미륵불 조성
문화재 지정 일시 2002년 11월 07일연표보기 - 해남 연당리 미륵불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
현 소장처 해남 연당리 미륵불 -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 635-5 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크기(높이) 205㎝[높이]|54㎝[두고]|53㎝[두폭]|43㎝[가슴 폭]|85㎝[어깨 너비]
문화재 지정 번호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연당리에 있는 석불.

[개설]

해남 연당리 미륵불(海南蓮塘里彌勒佛)해남군 황산면 연당리에 있다. 2002년 11월 7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해남 연당리 미륵불은 현재의 자리가 원래 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을에서 오랫동안 미륵불로 신봉되어 왔다고 한다. 무릎 이하는 땅속에 묻힌 상태이며 위는 시멘트로 덮여 있어 하부 구조를 확인할 수 없다. 크기는 현재 높이 205㎝, 두고 54㎝, 두폭 53㎝, 가슴 폭 43㎝, 어깨 너비 85㎝, 광배 두께 16㎝, 불상 돌출 8㎝이다.

[특징]

해남 연당리 미륵불의 불상과 광배는 한 돌이다. 광배에는 두광과 신광, 불꽃무늬의 표현이 없다. 머리 윗부분이 광배와 함께 파손된 상태이다. 파손된 석재는 뒷면에 세워서 시멘트로 붙여 놓았다. 판석형의 석재에 돋을새김이며 광배형의 판석은 상단부와 측면부가 거칠게 깨어진 상태이다. 상호는 모두 마멸되어 흔적이 없으며 턱 부근까지 늘어진 귀만 확인된다. 목 아래에는 한 줄의 음각 선이 그려져 있어 삼도의 일부인지 목걸이를 표현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오른손은 허벅지 부근에 대고 왼손은 복부 중간에 두고 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으로 왼 어깨에서 가슴으로 비스듬하게 옷 주름을 표현하였다. 상반신은 천의를 신체에 밀착되게 착용한 것으로 보이며 하반신 부분은 허벅지 부분에 옷 주름의 일부가 확인된다. 무릎 아래로 작은 동자상을 좌우에 돌출되게 표현하였다. 불상의 측면과 뒷면은 잘 다듬어졌다. 목걸이[추정]를 착용하고 천의를 걸치고 있는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보살상으로 보인다. 연당리 사지는 사찰의 명칭 및 내력이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조보살입상과 주변 일대에서 발견되는 고려 후기~조선 전기의 유물[어골문 와편, 복합문 와편, 경질 토기편, 조질 청자편]로 보아 고려 중기~조선 전기 무렵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미륵불 관련 설화]

해남 연당리 미륵불은 매년 마을에서 정월대보름과 사월초파일에 도제를 지내고 마을 발전과 평안을 기원하는데, 제장인 도제각은 마을회관 옆에 있으며 1992년 건립하였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미륵은 암수 한 쌍으로 있었지만 암미륵은 땅에 묻혀 버리고 수미륵만 남았는데, 지금의 미륵이 수미륵이라고 한다. 미륵불은 왼쪽 귀가 떨어져 나가고 없는데, 여기에 따르는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에 아주 잘 나가던 벼슬아치가 있었는데 나이 50세가 넘어도 아들이 없어서 근심하였다. 전국 방방곡곡 명산대천 천지신명은 물론 모든 사찰을 찾아 기도하며 아들 하나 점지해 주실 것을 빌고 또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벼슬아치의 꿈에 승려가 나타나 이르기를 “전라우수영으로 가서 미륵불을 조성하라.”라고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벼슬아치는 기이한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꿈을 잊을 수가 없어 스스로 해남으로 갈 것을 자처하고 전라우수사로 부임하게 된다. 전라우수사로 부임하던 중 마을 입구에 연꽃이 곱게 피어난 곳을 보고는 그곳에 미륵불을 조성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그러나 욕심이 많았던 전라우수사는 스스로 돈은 내지 않고 마을 주민들에게 돈을 거두어 미륵불을 조성하였다. 그 후 전라우수사는 아들을 갖게 되었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1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아들이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만다. 화가 난 벼슬아치는 미륵불을 산산조각을 내려 했으나 왼쪽 귀만 떨어져 나가면서도 미소를 짓고 있어 더욱 화가 났다. 벼슬아치는 하인들을 시켜 “아주 부숴 버려라.” 하고 호령하자 갑자기 하늘에서는 시커먼 먹구름이 일어나더니 천둥·번개가 치면서 날벼락이 일어 인부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미륵불을 건드리지 못하였으며, 전라우수사가 이 미륵불 앞을 지날 때마다 타고 있던 말의 다리가 부러지거나 가마가 부서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현황]

해남 연당리 미륵불은 마을에서는 ‘미륵불’이라 부르고 신앙하고 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석조보살입상이다. 2002년 11월 7일 해남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머리 등이 많이 훼손되어 정확한 형체는 알아볼 수 없다. 보호를 위해 현재 남향으로 조성된 보호각[용화당] 내에 안치하고 안내판을 설치하여 문화재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미륵불을 마을의 수호신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매년 정월대보름과 부처님 오신 날[사월 초파일]에 두 번 제를 올리고 있다.

[의의와 평가]

해남 연당리 미륵불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중기의 석조보살좌상이다. 전라우수사에 얽힌 전설과 함께 현재까지도 미륵불로 제를 지내는 등 불상에서 미륵불로 신앙이 변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자료로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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