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7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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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余美里-彌勒佛像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익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6년 12월 25일 - 서산군 운산면 여미리에서 유기상[남, 73]으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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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1년 - 『서산민속지』하 수록 |
관련 지명 | 미륵불상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
채록지 | 서산군 운산면 여미리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
성격 | 전설|신이담|불상건립담 |
주요 등장 인물 | 마을 사람|스님 |
모티프 유형 | 불상 건립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에서 미륵불상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1991년 서산문화원에서 간행한 『서산민속지』 하의 164~166쪽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최운식·김창진 등이 1986년 12월 25일 충청남도 서산군 운산면 여미리[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유기상[남, 73]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내용]
서산 일대에는 예로부터 마애불을 비롯한 미륵불이 폭넓게 산포해 있었다. 그 가운데 서산과 태안의 마애불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이처럼 돌로 가공하거나 바위에 새긴 불상이 다수 분포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석불 자체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여미리의 미륵불은 1960년대에 이 마을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홍수가 나면서 미륵불상의 몸통이 떠내려와 마을 시냇가에 나타났다. 당시 사람들은 이 불상이 머리가 없는 것을 보고 쓸모없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그 몸통을 이웃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가 도랑의 다리를 놓는데 사용하였다. 그런 뒤로 이곳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젊은이가 죽고 자살하는 사람이 발생하는 등 궂은 일이 반복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불상이 발견된 뒤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였다.
이 무렵 모래 채취 현장에서 미륵불의 머리가 발견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불상의 머리를 찾아 군에 신고하고, 한편으로 미륵불의 복원을 꾀하였다. 마을의 노인분들이 중심이 되어 각 가정에서 추렴을 하고, 스님을 불러 미륵불 복원재(復原齋)를 올렸다. 이렇게 재를 지내고 난 뒤부터 불상사가 잦아들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여미리에 새로 세운 미륵불은 가야산 근처에 있던 수호불이라고도 한다. 곧, 당시 홍수로 큰 물줄기가 수호불을 쓸고 내려와 이 마을에 다다른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모티프 분석]
「여미리의 미륵불상」의 주요 모티프는 불상 건립이다. 가야산의 수호불이 홍수 때문에 분리된 몸통을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자 마을에는 우환이 겹쳤고, 머리를 찾아서 다시 수호불을 복원시키고 재를 올리자 마을의 불상사가 사라졌다는 신이담이자 불상건립담이다. 이렇게 「여미리의 미륵불상」은 마을에 미륵불을 세우게 된 내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