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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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來嬉 |
영어음역 | Yi Naehui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춘진 |
추모 시기/일시 | 1892년 - 정려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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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
거주|이주지 |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장대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정의]
조선 후기 서산 출신의 열녀.
[가계]
아버지는 이관순(李寬順)이고, 남편은 청주 한씨 한병두(韓秉斗)이다.
[활동 사항]
이내희(李來嬉)는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품성이 바르고 효심이 깊었다. 19세 때 어머니가 병들자 하늘에 기도하며 정성껏 간병하였고, 병세가 위독해졌을 때는 손가락을 끊어 피를 마시게 하여 회생시켰다. 이내희는 원북면 장대리[현 태안군 원북면 장대리]의 청주 한씨 집안으로 시집가 100세 가까운 시증조부 한효기(韓孝基)를 봉양하였고, 숨을 거두려고 하니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넣었다. 시조부 한진구(韓鎭龜)가 병에 들었을 때도 밤낮으로 탕약을 달여 석 달을 한결같이 간병하였다.
시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해졌을 때도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 넣었다. 시어머니가 묵은 병을 앓을 때도 한결같은 자세로 간병하였다. 남편 한병두가 병들었을 때는 더욱 더 정성을 들였다. 자신이 대신 아프기를 기도하였고, 탕약은 남편을 주기 전에 반드시 먼저 맛보았다. 병이 위중하여 유언을 남기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근심하는 기색 없이 굳건한 태도로 정화수를 떠 놓고 치성을 드렸다. 간곡한 기도 덕분이었는지 한병두는 기적적으로 회생하였다가 3일 만에 죽었다. 이내희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연못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상훈과 추모]
19세 때 병든 어머니를 극진히 간병하여 회생시킨 일로 해미향교와 충청남도유도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또한 1892년(고종 29)에 효부 겸 열녀 정려문을 받았다. 『서산군지』[1927]에는 이내희의 정려를 위해 예조에 입안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