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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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自然條件-利用-人間-智惠赤裳山 |
영어공식명칭 | Human Wisdom using Natural Environment, Jeoksangsa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성욱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374년 - 적상산성 축조 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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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12년 - 적상산성 안에 실록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33년 - 묘향산 사고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 사고로 이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39년 - 적상산성 수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41년 - 적상산 사고에 선원각, 군기고, 대별관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643년 - 적상산 사고에 호국사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872년 - 적상산 사고 실록전, 선원각 개수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0년 - 적상산 사고 폐지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 무주 양수 발전소 준공 |
관련 장소 위치 | 적상산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
관련 장소 위치 | 적상산 사고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
관련 장소 위치 | 무주 양수 발전소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150 |
[정의]
자연 조건의 특성을 이해하여 그 시대의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인간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 적상산.
[개설]
적상산의 고위 평탄면과 절벽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지형적 조건을 적절하게 활용한 것이 무주 적상산성과 무주 양수 발전소이다.
[적상산의 지리적 특성]
적상산(赤裳山)[1,029m]의 대표적인 지리적 특징은 사면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주변 지역과 상대적인 고도차가 크다는 점과 산 정상부에 평탄한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중 사면이 절벽으로 이루어지고 주변 지역과 상대적인 해발 고도의 차이가 크다는 지리적 특성은 산성 등의 방어 시설 축조와 중요 시설이나 자료의 보관 그리고 고도차를 이용한 수력 발전 등에 유리한 조건을 의미한다. 그리고 높은 지역에 평탄지가 형성되어 있다는 지리적 특성은 자체적인 농업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산성을 축조할 경우 장기적인 방어 활동이 가능하고, 양수식 발전의 경우 상부 저수지의 건설이 가능한 입지 조건이 된다. 이 두 가지 지리적 특성을 지닌 적상산에서 우리 선조들은 방어 시설인 적상산성을 구축하였으며, 이곳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적상산 사고를 설치하였다. 또한 현대에는 상부의 평탄한 지형을 이용하여 상부 저수지를 만들고 상대적인 해발 고도의 차이를 이용하여 양수식 발전소를 설치하여 활용하고 있다.
1. 적상산에 오르는 길
적상산은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에서 북서쪽으로 약 10㎞ 지점인 덕유산 국립 공원 북서부에 위치해 있으며, 두문산[1,051m]에서 나누어지는 세 갈래의 산줄기 중에서 북서 방향의 산줄기에 해당한다. 이 산줄기는 두문산, 단지봉[769m], 적상산으로 이어진다. 적상산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북부의 적상 터널 길을 이용하는 방법[2차선 자동차 도로]과, 남서부의 사천리 주차장~주능선 일부~정상~능선 안부~안국사~내북창~외북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그리고 사천리 적상교~외사내~안렴대~안국사~하중리 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2. 지질 조건이 만들어 낸 붉은 암석과 절벽
적상산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에 위치하는 해발 고도 1,029m의 산과 산줄기이다. 적상산을 형성하는 암석은 중생대 백악기의 신라통 하부에 속하는 퇴적암류[적상산층]로 적색 역암과 적색 셰일, 응회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적색 계통의 퇴적암과 절리가 발달하여 붉은색의 암석과 절벽을 이루는 독특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주변 지역과는 700m 정도의 해발 고도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무주 지역은 소백산 지괴와 영남 육괴의 경계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기반암이 주로 선캄브리아기 고원생대 시기의 편마암류로 구성되어 있으며, 덕유산 변성암 복합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그리고 중생대 쥐라기에 화강암류가 관입하였으며, 백악기에 분지에서 만들어진 퇴적암들이 기반암을 덮고 있다. 적상산 상부와 천일 폭포를 구성하는 암석은 화산 폭발과 함께 분출한 폭발 부산물인 화산 쇄설물들이 공기 중에 부유하다가 쌓여서 만들어진 화산 쇄설성 암석이다. 이 후 북동 방향의 단층이 움직이면서 압축력이 가해졌고, 이때 분지 내에 형성된 역암을 포함한 퇴적암과 그 위를 덮고 있는 화산암이 솟아올라 적상산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북쪽의 천일 폭포와 남쪽의 송대 폭포는 해발 고도 700m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두 폭포는 지질학적으로 백악기의 화산 쇄설물이 식을 때 일어나는 부피 감소에 의해 만들어진 암석의 절리를 따라 물이 침투하여 침식 작용이 나타나고, 절리의 틈이 확장되어 형성된 폭포이다.
3. 절벽과 고위 평탄면으로 이루어진 지형 조건
적상산의 산체는 동서 방향보다 남북 방향이 약간 긴 타원형으로서, 동쪽의 곡저인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290m]나 서쪽의 곡저인 사천리[250m]의 해발 고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해발 고도를 형성하고 있다. 하부는 550m까지는 완경사를 이루지만, 550m에서 1,000m 내외의 정상까지는 절벽을 이루고 있다. 정상부는 상부 저수지[860m]를 중심으로 900m 내외에서 완경사와 평탄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적상산은 산 정상 부분이 평탄한 타원추의 모양으로 계곡이 방사상으로 발달하였으며, 산 정상 부분이 평탄하고 물이 풍부하며 사면이 절벽으로 형성되어 천혜의 요새지로서 지형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적상산성의 서쪽 면에 위치하는 적상산에서 북쪽으로 향로봉[1,024m]까지는 1,000m 이상의 가장 높은 산지를 형성하며, 동쪽은 850~900m의 산지이다. 이를 연결하는 남쪽 능선은 870m, 북쪽 능선은 850m로 연결되어 있다. 즉, 산성의 가운데 분지[현재는 상부 저수지]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이 높고, 남쪽과 북쪽이 약간 낮은 지형 구조로 이루어졌다. 특히 정상부의 물이 유출되는 북쪽의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방향이 가장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데, 이곳에는 적상산성의 북문이 위치해 있었다. 적상산 정상에 접근하기에 가장 유리한 지형 조건을 갖춘 북쪽 방향에는 2차선 도로와 함께 적상 터널이 해발 고도 800m, 머루 와인 동굴이 450m,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의 내창 마을이 330m, 상곡천과 만나는 지점인 내창교가 220m로 서서히 해발 고도가 낮아지고 있다. 동쪽의 무주군 적상면 포내리에 위치하는 괴목 초등학교는 해발 고도가 290m로, 적상산성의 동쪽 산 능선과 600m의 고도차를 나타내고 있으며, 서쪽으로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가 위치하는 적상 삼거리는 250m로, 적상산성 서부와는 700~800m의 고도차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남쪽의 치목재는 540m로 약 300m의 고도차를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적상산성 내의 물이 흘러내리는 북쪽 방면인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내창 마을 방향으로 적상산성의 출입로가 개설되어 있다. 적상산성 내부에서는 적상산이 1,029m인데 비하여 안국사 970m, 호국사 950m, 적상호 860m, 전망대 875m 등으로 정상부 내에서는 비교적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 산 정상부에서의 이러한 평탄한 지형과 주변 지역의 급경사 및 절벽과 같은 지형 조건은 적상산이 방어시설인 적상산성 축조와 고도차 및 상부 저수지가 필요한 양수 발전소 건설에 유리한 장소임을 말해 주고 있다.
[적상산성을 축조하고 적상산 사고를 설치한 조상의 지혜]
적상산성은 적상산의 형성 시기에 발생한 단층 활동과 그에 따른 절리에 의해 형성된 절벽을 활용하여 축성된 것이다. 적상산성의 사면은 500m 내외의 급경사지를 이루기 때문에 정상 부분에서의 방어는 쉬운 반면 밑에서 공격하기에는 어려운 지형 조건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지형 조건을 잘 활용하여 축성한 것이 적상산성이다. 또한 적상산의 내부에는 고위 평탄면이 발달하고 물이 풍부하여 농업 생산 활동이 가능하여 장기전도 가능한 천혜의 조건을 지니고 있다. 이 후 이곳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를 설치하여 이러한 천혜의 조건을 더욱 잘 활용하였다.
1. 적상산성의 축성
적상산성은 고려 시대 이전에 이미 존재했었던 성으로 보이며 삼국 시대에 국경에 위치한 성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인 1010년 거란의 침입 때에 이용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 말 최영(崔瑩)이 산성 축조를 건의하였고[1374년], 조선 시대 박황의 건의로 수축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1639년]. 적상산성은 고려 시대 말기에 축조된 것으로[사적 제146호, 지정 면적 21만 4975㎡,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둘레가 약 3,000m이다. 현재는 북문지와 서문지 및 사고지(史庫址)가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적상산성은 석축으로 둘레 약 5,127m[1만 6920자], 높이 약 2.1m[7자]였으나 이제는 폐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성내에는 비옥한 토지가 있었고, 못 4개소, 우물 23개소가 있었다. 위치는 북위 35° 56′ 43″, 동경 127° 41′ 09″ 지점이다. 안국사에서 서남쪽 1㎞ 지점에 안렴대(按廉臺)라는 큰 암반이 있는데, 이 암반은 절벽 위에 있고 암반 밑으로는 큰 석굴이 있다. 고려 말기 거란의 침공을 받았을 때 3도의 안렴사(按廉使)들이 이곳에 피난하여 ‘안렴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2. 적상산 사고의 설치
조선 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기 위해서 사고를 만들어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 이전에는 한양의 춘추관, 전주, 충주, 성주의 4개 사고에 보관하였으나, 임진왜란 때에 전주 사고만 보존되었다. 이후 안전한 관리를 위하여 강화도의 마니산, 봉화의 태백산, 영변의 묘향산, 평창의 오대산에 사고를 설치하였으나, 광해군 때 청[후금]의 위협으로 묘향산 사고의 대체지로 적상산성을 만들고 실록을 이전하였다[1633년 이전]. 적상산 사고를 관리하기 위하여 산성 내에 호국사를 개찰하고 승군을 주둔시켰다. 1910년 사고가 폐지되면서 적상산 사고의 실록은 서울 대학교로 옮기게 되었고, 6·25 전쟁 때인 1950년에 북한군에 의해 평양의 김일성 대학으로 옮겨졌다.
적상산 사고는 1610년(광해군 2) 순안 어사(巡按御史) 최현(崔睍)과 무주 현감 이유경(李有慶)의 요청에 따라 사관을 적상산에 보내 땅의 모양을 살피게 하고 산성을 수리하게 하였다. 1612년 적상산성 안에 실록전(實錄殿)을 건립하였으며, 1618년 9월부터 실록이 봉안되기 시작하였고, 1633년(인조 11)까지 묘향산 사고의 실록을 모두 옮겨서 보관하였다. 1641년에는 선원각(璿源閣), 군기고(軍器庫), 대별관(大別館)을 건립하고 『선원록 璿源錄』을 봉안하여 적상산 사고는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1643년에는 적상산 사고를 보존하기 위하여 호국사(護國寺)가 세워졌다. 병자호란 때 마니산 사고의 실록이 산실(散失)되어 이를 다시 보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는데, 이때 적상산 사고본을 근거로 작업이 이루어졌다[1666년]. 정묘호란 때는 승려 상훈(尙訓)이 사고의 서책을 성 밖의 석굴(石窟)로 옮겨 보관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사고에 다시 봉안하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1872년(고종 9) 실록전과 선원각을 개수하였으며, 1902년에 대대적인 개수 공사를 하였다. 그러나 1910년 조선의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실록을 구황실 문고(舊皇室文庫)로 편입해 장서각[창덕궁]에 보관시켰다. 실록전은 없어졌고, 선원각은 안국사(安國寺) 경내로 옮겨져 천불전(千佛殿)으로 전해 오고 있다.
[지형적 특성을 활용한 무주 양수 발전소]
무주 양수 발전소는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150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988년 5월에 착공하여 1995년에 준공한 양수식 발전소이다[총 공사비 3000억 원]. 양수 발전은 수력 발전의 일종으로 전력 요금이 저렴한 심야에 하부 저수지의 물을 상부 저수지로 끌어올려 저장하였다가, 전력 수요가 많은 시간대에 물을 하부 저수지로 낙하시켜 발전하는 방식이다. 무주 양수 발전소는 적상산 상부에 상부 저수지[해발 860m]가 있고 하부 저수지로는 무주군 적상면 상곡천 중류의 무주호[해발 278m]가 있으며, 발전소는 상부 저수지와 하부 저수지 중간의 지하에 설치되어 있다[해발 201m]. 이 공사를 위해 뚫었던 공사용 연결 동굴은 현재 무주 와인 동굴로 활용되고 있다.
해발 875m의 적상산 전망대에는 발전기가 급정지할 때 수로 내의 압력이 급상승하는 것을 완화시켜 주는 조압 수조(調壓水燥)가 있다. 수로 내에서 낙차가 시작되는 높이는 750m이고, 지하 발전소가 위치하는 지점이 201m으로 낙차는 550m 정도이다. 무주 양수 발전소는 30만kw 의 발전 설비 2기가 설치되어 있어 총 발전 설비 능력은 60만kw 규모이다. 생산된 전기는 주로 대전과 대구에 공급되며, 한국 남동 발전에 속해 있다. 적상산에 건설한 상부 댐[해발 860m]은 높이 60.7m, 길이 287m, 저수량 372만㎥이고, 적상산 아래에 건설한 하부 댐은 높이 42.6m, 길이 234m, 저수량 668만 5000㎥로 하부 댐에 저장된 물은 5년 동안 발전이 가능한 양이다. 지하에는 폭 21m, 높이 49m, 길이 98m 규모의 지하 발전소가 있는데[99㎡ 아파트 약 400세대가 들어설 수 있을 정도의 공간], 견학도 가능하며 무주군 적상면 포내리에는 무주 전력 홍보관이 있다.
양수 발전은 전력 수요가 증가할 때 저장해 두었던 상부 댐의 물을 하부 댐으로 낙하시켜 전력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하루 중 전력 사용이 가장 많은 시간대에 발전함으로써 전체적인 발전 효율을 향상하고, 경제적인 전력 계통의 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양수 발전은 발전 준비 시간이 화력 7시간, 원자력 2일인데 비하여, 3~4분으로 아주 짧으며 전국에 8곳에서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전력 계통의 돌발적인 사고 등에 대처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양수 발전소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산의 정상 부분에 상부 댐을 만들 수 있는 지형 조건이 되어야 하고, 낙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상부와 하부 저수지 사이의 고도차가 존재해야 하며, 하부에 물의 공급이 가능한 하천과 댐을 설치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적상산의 무주 양수 발전소는 상부 저수지를 만들 수 있는 산 정상 부분의 평탄한 지형, 급격한 고도차, 하부에 물을 공급하고 저장할 수 있는 조건[상곡천과 무주호]을 모두 갖춘 지역이다.
[자연 조건을 활용한 인간의 지혜]
적상산은 주변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주변 지역과의 상대적 비고 차이가 크고 정상 부분에 평탄한 지형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지형 조건은 중생대 백악기 때의 지질 작용과 그에 따른 지형적 특성에 기인한다. 적상산층은 경상계의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져 암석의 색깔이 붉게 나타나는데 이러한 암석의 특징과 수직으로 절리가 발달하여 사면이 급경사의 절벽을 이루는 특징이 결합된 지역이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적상산의 이러한 지형 조건을 활용하여 이곳에 적상산성을 축조하였고, 그 내부에 적상산 사고를 만들어 『조선왕조실록』을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는 등 적상산의 지형적 특성을 잘 활용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적상산의 해발 고도 차이와 고위 평탄면[상부 저수지]의 특성을 활용하여 무주 양수 발전소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적상산은 인간의 자연 환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당시의 필요에 따라 가장 적절하게 자연을 활용한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 그 사례가 과거에는 적상산성의 축조와 적상산 사고의 건립이었으며, 현대에는 무주 양수 발전소의 건설과 와인 동굴 및 조압 수조를 활용한 전망대와 같은 관광 명소로의 활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