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1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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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Treadmill Song |
이칭/별칭 | 「디딜방아 찧는 노래」,「디딜방아 찧는 소리」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
집필자 | 이영금 |
채록 시기/일시 | 1990년 - 「디딜방아 노래」 박길선·김화옥 등으로부터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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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0년 - 「디딜방아 노래」, 『무주 군지』에 수록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디딜방아 노래」, 『무주 군지』 중권에 수록 |
채록지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
가창권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
성격 | 민요|노동요 |
토리 | 메나리토리 |
기능 구분 | 제분 노동요 |
형식 구분 | 제창 |
가창자/시연자 | 박길선[여, 67세]|김화옥[여, 70세]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에서 방아를 찧으면서 부르던 노동요.
[개설]
「디딜방아 노래」는 여성들이 디딜방아의 발판을 밟아 곡식을 빻을 때 부르는 제분 노동요이다. 이를 「디딜방아 찧는 노래」, 「디딜방아 찧는 소리」 등이라고도 한다. 디딜방아는 여러 사람이 곡식을 찧어야 하기 때문에, 서로의 동작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따라서 방아를 찧을 때는 여성들이 「디딜방아 노래」를 불렀다. 「디딜방아 노래」의 선율은 구슬픈 메나리토리이다.
[채록/수집 상황]
「디딜방아 노래」는 1990년 무주군에서 발행한 『무주 군지』에 실려 있으며, 2004년 무주 군지 편찬 위원회가 발간한 『무주 군지』 중권에 재수록되어 있다. 이는 1990년 무주군 안성면 금평리 주민인 박길선[여, 67세]·김화옥[여, 70세] 등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구성 및 형식]
「디딜방아 노래」는 여럿이 메나리조로 부른다. 선율의 구성 음이 ‘미·솔·라·도·레’인데, 주요 음은 ‘미·라·도’이다. ‘라’음은 ‘솔’음을 경과음으로 사용하며 미음으로 하강한다. ‘레’음은 ‘도’음으로 퇴성하고 ‘라·도’ 사이의 단3도 도약 진행이 잦게 나타난다.
[내용]
새야 새야 푸른 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사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푸른 새야/ 암놈이 물어 수놈 주고/ 늙은 과부는 한숨 쉬고/ 젊은 과부는 단봇짐 싸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디딜방아를 찧을 때는 적어도 두 명의 인원이 필요했다. 한 사람이 디딜방아에 올라가 방아를 힘껏 누르면, 다른 한 사람은 확에다 연속적으로 알곡을 집어넣었다. 곡식을 잘 찧기 위해서는 서로 호흡을 맞추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발 딛는 사람이 자칫 실수하게 되면, 곡식을 밀어 넣는 사람이 손을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런 까닭에 여성들은 「디딜방아 노래」에 호흡을 맞추며 효율적으로 방아를 찧었다.
[현황]
요즘은 농업 기술의 근대화로 인하여 농촌에서도 방아 찧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따라서 「디딜방아 노래」의 전승도 자연스럽게 단절되었다. 몇몇의 노인들이 노인정에서 놀 때 「디딜방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노동 현장이 상실된 채로 가창되기 때문에 생활을 기반으로 한 민요의 생동감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의의와 평가]
「디딜방아 노래」의 창법은 메나리토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무주 지역은 영남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영남의 메나리토리 창법이 무주 민요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노래 사설에는 전봉준과 관련된 참요(讖謠) 가사가 삽입되어 있다. 전봉준은 동학 농민 혁명에 실패했지만, 민중들은 그를 ‘녹두’ 장군이라 칭하며 오랫동안 사랑해 왔다. 그런 까닭에 ‘새야 새야 푸른 새야’와 같은 참요에는 새 시대를 갈망했던 민중들의 아픔과 안타까움이 반영되어 있다. 「디딜방아 노래」의 가사를 보면, 전봉준에 대한 연민 의식 이외에도 ‘늙은 과부’나 ‘젊은 과부’의 서러움도 담고 있다. 혁명 당시 전봉준은 ‘과부 재가 허용’을 주장하였는데, 혁명의 실패로 인해 무주 여성들이 큰 좌절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디딜방아 노래」를 통해 무주 여성들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