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1181
한자 吉旺-王-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마을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길왕마을 왕바위」, 『내 고장 전설집』에 수록
관련 지명 왕바위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마을 지도보기
성격 설화|암석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적상산성 사고를 방비하는 장군
모티프 유형 바위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마을에서 왕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길왕마을 왕바위」는 왕바위와 관련하여 ‘왕바위’ 이름이 부여된 내력을 소개하면서 그 왕바위에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암석 유래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길왕마을 왕바위」는 1992년 김경석이 편찬하고 무주군에서 간행한 『내 고장 전설집』의 50쪽에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채록 시기는 미상이다.

[내용]

조선 왕조는 적상산의 지세를 보고 나라의 중요한 문서를 보관할 만하다고 여겨서 성을 쌓고 사고(史庫)를 지어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관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 대왕은 실록이 훼손될까 염려하여 병사들을 보내어 사고를 지키도록 어명을 내렸다. 어명을 받들고 병사들과 적상 산성에 당도한 장군은 산성의 방비를 살피기 위해 말을 타고 주위를 한 바퀴 돌았는데 적상면 길왕마을 절골[寺谷]에 이르렀을 때 장군은 목이 말랐다. 샘물을 찾아 두리번거리던 장군은 열길 아래 바위틈에서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말 위에 올라탄 채 산중턱에서 그 바위를 향해 뛰어내려 물을 마셨다. 이때 뛰어내린 말발굽 자국이 선명하며 물을 마시느라 돌아다닌 장군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이때부터 이 바위를 ‘왕바위’라 불렀고, 그 샘물을 ‘약물탕’이라고 불렀다.

[모티프 분석]

「길왕마을 왕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바위’이다. 커다란 바위는 시골 골짜기 어느 곳에나 흔히 있을 법한 것이데,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마을의 왕바위에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다. 중요한 사고를 품고 있는 곳이라는 역사성과 사고를 지키는 장군의 발자국이 있는 적상산이라는 지역성을 동시에 부여하여 길왕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을 자극하는 자연물이 된 것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