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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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君先 |
영어공식명칭 | Jang Guns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선아 |
출생 시기/일시 | 1876년 10월 - 장군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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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9년 3월 - 장군선 군용 자금 모금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8월 - 장군선, 조석우 의병 부대에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9월 - 장군선 체포되어 내란죄로 기소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9월 23일 - 장군선 공주 지방 재판소 청주 지부에서 유형 15년 선고 받음 |
추모 시기/일시 | 2013년 - 장군선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무주 도호부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 |
활동지 | 영동군 - 충청북도 영동군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무주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장군선(張君先)[1876~?]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괴목리에서 출생하였다. 문태서(文泰瑞) 의병 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김부개(金富介)·장한갑(張漢甲) 등과 함께 각자 곤봉과 총을 휴대하고 총 35정을 휴대한 다음 동료 의병 50명과 함께 1909년 음력 3월 25일 밤 충청북도 영동군 양남면 필력촌(筆力村) 용산리의 홍관서(洪寬西) 집에 들어가 군용 자금으로 금(金) 30원을 모금하고, 3월 28일에는 전라북도 금산군 부북면 가마곡리 육석여(陸石汝)의 집에 들어가 130냥을 모금하였다. 또한 3월 30일 밤에는 동군 부동면 어재리 장재관(張在寬)의 집에 들어가 엽전 30냥을 모금하였으며, 5월 5일 밤에는 같은 곳의 장사문과 장군범의 집에 들어가 엽전 185냥을 모금하여 의병 전쟁 수행에 사용하였다.
장군선은 그해 8월 충청북도 영동에서 전라북도 운봉 출신의 조석우(趙錫祐) 의병 부대에서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의병장들의 전사와 일본 군경의 탄압으로 의병 부대의 활동이 위축되어 가자 1909년 8월 23일 조석우가 영동군 양내면 영국사(寧國寺)에서 장군선, 조덕장(趙德章)·권덕원(權德元) 등과 모임을 가지고 삼남 대장(三南大將)이라 하여 총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장군선, 조덕장, 권덕원은 부장(副將)이 되고, 방치경 등은 병졸(兵卒)이 되었다. 이들은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일본인을 전부 사살하고 철도 정거장 등 일제의 침략 거점을 파괴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격문을 띄우는 한편, 군사를 모집하며 거사를 준비하던 중 체포되었다. 이후 장군선은 내란죄(內亂罪)로 기소되어 1909년 9월 23일 공주 지방 재판소 청주 지부에서 유형 15년을 선고 받고 공소(控訴)[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5일 경성 공소원(控訴院)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2013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