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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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山申氏 |
영어공식명칭 | Pyeongsan Sinssi|Pyeongsan Sin Clan |
이칭/별칭 | 평주 신씨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대길 |
본관 | 평산[평주] - 황해도 평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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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석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
세거|집성지 | 석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
성씨 시조 | 신숭겸(申崇謙) |
입향 시조 | 신세령(申世寧) |
[정의]
신숭겸을 시조로 하고, 신세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무주군의 세거 성씨.
[연원]
평산신씨의 시조는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공을 세운 신숭겸(申崇謙)[?~927]이다. 신숭겸은 본래 전라도 곡성(谷城) 출신으로 뒤에 춘천(春川)으로 이거하여 살았던 인물로 추정된다. 황해도 평산에서 사냥을 하던 중 신숭겸의 궁술(弓術)에 감탄한 태조 왕건이 식읍(食邑)과 함께 평산을 본관으로 삼게 하였다.
신숭겸은 918년에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는 데 공을 세워 개국원훈대장군(開國元勳大將軍)이 되었는데, 『고려사(高麗史)』에는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다. 927년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전투를 벌인 대구 팔공산에서 태조 왕건을 구사일생(九死一生)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후에 전사한 신숭겸은 994년(성종 13) 태사로 추증되어 개국장절공(開國壯節公)으로 태조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입향 경위]
평산신씨로 처음 무주로 이주한 인물은 문희공(文僖公) 신개(申槪)의 증손인 신세령(申世寧)이다. 신세령의 자는 안경(安卿)이며, 호는 노암(老巖)이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음사(蔭仕)로 충순위(忠順衛)의 승의부위(勝儀副尉)에 올랐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아버지 신숙빈(申叔彬)이 거창 현감으로 있을 때 무풍의 석항(石項)[무주군 무풍면 증산리]에 들렸는데, 이곳에 터를 잡고 이주할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 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세상일에 뜻을 버리고 석항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고, 자손이 대대로 살았다. 후손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에 정진한 삶을 살면서 수직(壽職)[80세 이상의 벼슬아치와 90세 이상의 백성에게 은전(恩典)으로 주던 벼슬]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 참판(戶費參判)을 받은 신권(申權),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긴 신현태(申鉉泰) 등이 있다.
[현황]
2015년 무주군에서 간행한 『통계 연보』에 의하면, 무주군에는 404명의 신씨가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평산신씨는 340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