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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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曾山里金寧金氏門中古文書 |
영어공식명칭 | Documents of the Kimnyeong Kim Family in Jeungsan-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철배 |
작성 시기/일시 | 1897년 - 증산리 김녕김씨 문중 고문서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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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 시기/일시 | 1897년 - 증산리 김녕김씨 문중 고문서 발급 |
소장처 | 김녕김씨 문중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
성격 | 고문서 |
관련 인물 | 김철동|김해영|박중호 |
용도 | 상서|등장|첩보 |
[정의]
1897년에 작성된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 김녕김씨 문중 소장 고문서.
[개설]
무주의 김녕김씨는 1782년 무신(戊申)의 난(亂)을 즈음하여 진안에서 무주군 적상면으로 이거(移居)하였는가 하면, 무풍의 김녕김씨는 함양에서 무풍으로 이거한 이후 대대로 세거(世居)하고 있다.
[제작 발급 경위]
증산리 김녕김씨 문중 고문서(曾山里金寧金氏門中古文書)는 1897년을 전후해서 석항리 유생(儒生), 향교 교임(校任)을 비롯한 무주 유생, 혹은 도내 유생, 석항리 존위(尊位), 집강(執綱) 등이 각기 무주 군수, 순찰사(巡察使), 내부대신(內部大臣) 등 관부에 효자 김철동(金哲東)의 효행을 표창해 달라고 올린 진정서 성격의 문서이다.
[형태]
증산리 김녕김씨 문중 고문서 6점은 고문서와 고문헌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모두 필사본이며, 규격은 각 고문서의 양식에 따라 다양하다. 1897년 김해영(金海榮)이 올린 상서(上書) 49×99㎝, 1897년 박중호(朴重浩) 등이 올린 등장(等狀) 48×96㎝, 1897년 석항리 존위의 첩보(牒報) 51×99㎝, 1897년 풍남면 집강이 올린 첩보 54×87㎝ 등 종류와 성격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구성/내용]
무주군 무풍면 증산리는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조치에 따라 풍동면, 풍남면, 횡천면을 합쳐 무풍면이라 하였고, 풍남면 내 철목리, 석항리, 사동리, 증산리, 속동리, 은고리, 한치리, 오산리 등 8개 리에서 철목리, 증산리, 은산리 3개 법정리로 개편되었다. 증산리 김녕김씨 문중 고문서는 1897년에 석항리에 사는 김해영이 무주 군수에게 올린 상서로 효행이 남달랐던 김철동을 표창해 달라고 요구한 상서이다. 같은 해에 무주 향교 교임 박중호 등은 32명이 연명하여 무주 군수에게 김철동의 효행을 포창해 달라고 등장 형식으로 올렸으며, 석항리의 존위와 풍남면 집강은 무주 군수에게 첩보의 형식으로 같은 내용을 올렸다. 이어서 1903년에 무주 유생 권대형과 이시발 등이 내부대신에게 청원하는 등장을, 1906년에는 도내 유생 황경주(黃京周) 등이 순찰사에게 표창해 달라는 연명 상소를 올렸다. 다만 이러한 진정에도 불구하고 참의(參議) 김철동의 효행이 표창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의의와 평가]
1890년대 이후 효자 정려 관련 문서로, 다양한 형태의 진정서를 볼 수 있는 자료이다. 보통 유림의 동의를 얻어 향교에서 발의하고 도관찰사에게 제출하면, 도에서 다시 조선 정부 예조에 올리는 절차를 밟게 되며, 예조에서는 내용과 형식을 참작하고 법전에 의거하여 입안 문서를 발급하게 된다. 증산리 김녕 김씨 문중 고문서에는 아직 무주 향교에서 보낸 통문(通文)이나 답통(答通), 혹은 예조의 입안 문서가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