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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풍고성 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500517
한자 茂豊古城-
영어공식명칭 Mupung Goseong teo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문평 마을
시대 고대/삼국 시대/신라
집필자 강원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8년 - 무풍고성 터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소재지 무풍고성 터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문평 마을 지도보기
성격 성터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문평 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무산현의 읍성 터.

[변천]

무풍고성(茂豊古城)은 신라 무산현(茂山縣)의 읍성(邑城)으로, 현재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문평[거문들] 마을 일대에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전한다. 지금의 무풍면은 삼국 시대에 신라 무산현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무산현은 지금의 무주군 무주읍 일원에 자리하였던 백제의 적천현(赤川縣)과 국경을 이루고 있던 신라의 서쪽 변방 지역으로, 삼국 통일 이후 757년(경덕왕 16)에 무풍현(茂豊縣)으로 개칭되어 지금의 김천 지역에 해당하는 개령군(開寜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기까지 무풍현은 변진·신라 문화권에 속해 있다가 1018년(현종 9)에 주계현(朱溪縣)무풍현이 모두 진례군(進禮郡)[금산 지역]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무풍현에 감무를 두고 주계현도 겸임하도록 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 무풍현주계현을 병합함으로써 지금의 무주군 틀이 마련되었다. 조선 시대의 군현제 개편에 따라 1414년(태종 14)에 무주현(茂朱縣)으로 개칭되었고, 중심지를 주계(朱溪)에 두었다. 이로써 무풍현의 읍성은 그 존재 가치가 약해지면서 차차 퇴락되고 민가가 들어서면서 파괴가 이루어져서 지금은 성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기록으로만 알려져 있다.

무풍고성에 대한 문헌상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문헌비고(文獻備考)』 등에 나타나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무주현 고적조에는 "옛날 무풍은 지금의 치소에서 동쪽으로 60리[23.56㎞] 떨어져 있으며 옛 성이 있다. 석성의 둘레는 531척[160.91m], 높이 5척[1.52m]이며 군창이 있다[古茂豊 在今治東六十里有古城 石築周五百三十一尺 高五尺 有軍倉]"라고 적혀 있으며, 『문헌비고』 권27 성곽조에는 "무풍의 옛 성은 동쪽 60리에 있으며, 석성의 둘레는 531척, 높이 5척이며 지금은 폐성이 되었다[茂豊古城 在東六十里 石築周五百三十一尺 高五尺 今廢]"라고 적혀 있다.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약 160m, 높이는 1.5m 정도의 석성으로 군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황상 15세기 초에 비록 치소가 주계로 이전하였지만 16세기 전반기까지 창고로 계속 이용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위치]

무풍고성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자리는 알 수 없지만,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문평 마을 일원일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무풍면 소재지에서 국도 제30호선을 따라 무주 방면으로 800여 미터 가다 보면 원촌교가 나오고, 원촌교에서 북쪽 400여 미터 가면 좌측에 문평 마을이 나타난다. 문평 마을에는 가옥들이 다수 들어서 있으며, 마을 앞쪽으로는 소하천이 흐르고 소하천 건너편에는 현내들의 들판이 경지 정리되어 있다. 무풍고성 터는 민가가 들어서 있는 마을 일원으로 추정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무풍고성 터에 대한 정식적인 발굴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88년에 전주 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무주 지방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나 형태 등은 알려지고 있지 않다.

[현황]

무풍고성은 현존하지 않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제5권을 보면, 647년 진덕왕(眞德王) 원년 동 10월에 백제 의자왕(義慈王)이 신라 땅이었던 무산과 감물(甘勿)[함안], 동잠(桐岑)[김천]을 포위하고 공격하자, 신라 왕이 김유신으로 하여금 보병·기병 1만여 명을 거느리고 치열한 전투를 하게 하여 적의 머리 3,000여 두를 베었던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현재 문평 마을 일원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위치뿐만 아니라 마을이 들어서 있어서 그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성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며, 문평 마을 앞쪽에 남-북 방향으로 소하천이 흐르고 있고 배후에 해발 581.1m의 높은 산이 우뚝 서 있는 지형을 고려한다면 평지성일 것으로 추측된다.

[의의와 평가]

무풍고성은 삼국 시대 신라 무산현의 치소지로서 백제와 접경지를 이루면서 신라군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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