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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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哲木里玉山張氏烈女閣 |
영어공식명칭 | Oksan Jangssi Yeollyeogak in Cheolmok-ri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1236-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최범호 |
건립 시기/일시 | 1898년 - 철목리 옥산장씨 열녀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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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철목리 옥산장씨 열녀각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1236-5 |
성격 | 정려각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흥양 이씨 문중 |
관리자 | 흥양 이씨 문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에 있는 개항기 옥산장씨의 열녀각.
[개설]
옥산장씨(玉山張氏)는 흥양인 이철구(李喆龜)에게 시집온 뒤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남편이 병에 걸려 해가 갈수록 깊어 가자 시할아버지가 염려할 것을 걱정하여 차도가 있다고 위로하였고, 홀로인 시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있음을 민망하게 여기고 지성으로 모시면서 공양하였다. 그럼에도 남편의 병이 더욱 깊어지자 옥산장씨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니에게 병은 이미 고치기 어렵게 되었는데 대를 이을 자식도 없으니, 불행이 닥친다면 할아버님과 어머님이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하면서 옛적부터 집안에 양자를 들이는 예가 있으니, 양자를 드리기를 요청하였다.
그 후 빨래와 바느질을 시누이에게 부탁하면서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옷을 장롱 속에 간수해 놓고, 몇 가지 사복(私服)을 챙겨 친정에 보내면서 옥산장씨의 모습을 대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여러 친족들에게 조용히 말하였는데, 병자의 죽음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만일 빈소를 차리고 장사 지내는 날을 기다린다면, 시할아버지와 시어머님의 슬픔만 커질 것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남편이 숨을 거두어 온 가족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옥산장씨는 미리 감추어 두었던 남편의 허리띠로 같은 시간에 목을 매어 남편을 따라 죽었다. 그때 옥산장씨의 나이 22세로 남편과 동갑이었다.
[위치]
옥산장씨 열녀각(玉山張氏烈女閣)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철목 마을 정문거리에 있다. 무주군 무풍면 무풍 사거리에서 라제통문로 설천 무주 방면으로 좌회전 후 916m 이동하며 오른편에 철목리 옥산장씨 열녀각이 있다.
[변천]
1863년(철종 14)년 10월에 정려(旌閭)를 내렸고, 1898년(고종 35)에 철목리 옥산장씨 열녀각을 세웠다.
[형태]
정면 1칸[215㎝], 측면 2칸[220㎝]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건물 안에 정려 현판이 있다. 정려 현판에는 ‘효부 열녀 학생 흥양 이철구지처 유인 옥산장씨지려(孝婦烈女學生興陽李喆龜之妻孺人玉山張氏之閭)'라고 쓰여 있다.
[현황]
철목리 옥산장씨 열녀각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 철목 마을 정문거리에 철목리 이만경 효자각(哲木里李晩景孝子閣), 이만번 충신각(李晩蕃忠臣閣) 옆에 나란히 위치하여 보전되고 있다. 흥양 이씨(興陽李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