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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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陽坪里洞祭 |
영어음역 | Yang Pyeongni Dongje |
영어의미역 | Yang Pyeongni Village Ritual |
이칭/별칭 | 양평리 산천고사,양평리 서낭제,양평리 산신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상희 |
의례 장소 |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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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 신앙|산신제|서낭제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1월 15일 이전 |
신당/신체 | 제당|신목 |
[정의]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에서 수몰 이전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 제사.
[개설]
양평리 동제는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의 신당(神堂)에서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이전에 마을 공동으로 지냈던 제사이다. 양평리 동제는 산고사(산신제, 산천고사)와 서낭제 순으로 진행된다.
[연원 및 변천]
양평리마을에서는 오래된 느티나무와 제당에서 매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동제를 올렸다. 양평리마을에서 올리던 동제는 산천고사와 서낭제가 있었다. 서낭제는 마을 어귀에 서 있었던 느티나무와 당집을 제장 삼아 제를 올렸고, 산천고사는 마을 뒷산에 올라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냈다.
그러나 청풍면 일대의 자연 마을이 수몰되어 마을 사람들이 이사를 가게 되고, 또 마을이 축소되면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던 서낭당과 산천고사장도 사라지게 되었다. 마을 안위에 큰 위기를 겪은 마을 주민들의 전통 신앙에 대한 신성성도 희박해지면서 제장이 없어지고 의례도 중단되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양평리마을 어귀에 있던 수백 년이 된 느티나무와 제당(祭堂)을 신당 삼아 서낭제를 올렸으나 마을의 수몰 이후 없어졌다. 산천고사를 올리던 산신제장은 약수터로 유명해 약수터 골짜기라 불렸는데, 이곳에 있던 수목을 신목(神木)으로 여겼다.
[절차]
양평리마을 사람들은 음력 정월 설을 쇤 후 모여서 생기복덕을 가려 제주를 선출한다. 제관과 축관, 공양주 세 사람이 선출되면 이들은 엄격한 금기를 지킨다. 목욕재계하고,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며 제를 준비한다. 제사 비용은 마을의 공동 기금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청풍 김씨와 안씨 가문에서 헌납한 토지이다. 동제의 차례는 우선 약수탕, 약물탕이라 불리는 약수터 골짜기에서 산천고사를 지내고 내려와 마을 어귀에 있는 당(堂)에서 서낭제를 지낸다.
제수 마련과 절차는 여느 동제(洞祭)와 유사하다. 산신제, 특히 서낭제는 간소해진 유교식 절차에 맞추어 간단하게 진행된다. 삼색실과, 떡, 제주, 포 등을 제수로 마련하고 헌작, 재배, 소지 순으로 간소화하였다.
[부대 행사]
음력 정월 대보름 즈음에 동제를 올리기 때문에 정월 대보름 놀이가 연계되어 마을 축제가 시작되기도 했다.
[현황]
수몰 이후 산천고사와 서낭제는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