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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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弼翼 |
영어음역 | Yi Pilik |
이칭/별칭 | 춘삼(春三)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원주(原州). 본명을 숨기고 춘삼(春三)이라는 이름을 썼다.
[활동 사항]
이필익(李弼翼)[?~1896]은 단양 평동 출신으로,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진압에 앞장섰다. 을미의병 당시 서상렬(徐相烈)을 따라 영남으로 나아가 병력을 소모하였고, 단양 영춘 지역에서도 모병 활동을 하였다. 풍기의 백천에서 모병 활동을 하던 중 소모장 황기룡(黃基龍)과 대립하였다. 황기룡이 기생 놀음을 좋아하여 이를 못하게 하였는데, 그가 “이필익이 자신을 죽여 모병 활동을 방해하려는 일본군의 첩자”라고 본진에 밀고하였다고 한다.
영남에서 활동하면서 선비들을 무시하였다는 보고도 있었다. 결국 단양의 상진에서 모병을 하던 중 본진에 불려가 곧장 처형되고 말았다. 그날이 제천 장날이었는데, 주위의 여러 인사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이미 처형된 뒤였다. 이후 후손들은 일제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 이필익의 의병 활동을 숨겼으며, 일제의 학교 교육을 거부하며 서당에서 신학문을 배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