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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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德常 |
영어음역 | Won Deoksang |
이칭/별칭 | 원건상(原建常)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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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
거주|이주지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호좌의진 소모장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이강년 의진의 의병.
[활동 사항]
원덕상(元德常)은 본관이 원주(原州)이며, 지금의 제천시 봉양읍에서 살았다. 일본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단양군 어상천면 연곡리 출신의 양반으로 친척인 보산에 살던 의병론자 원도상(元道常)과 왕래하면서 기맥을 통하였다. 의병 활동을 하면서부터 이름을 원건상(原建常)으로 고쳤다고 한다. 1905년(고종 42) 원용팔(元容八)이 의병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후 정운경(鄭雲慶)을 좇아 의병을 일으켜 단양의 장림에 근거지를 두고 기세를 올렸으나 정운경이 체포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될 때 해산과 동시에 봉기한 원주의 무기를 얻어 일어난 이강년(李康秊)과 의기투합하여 호좌의진의 소모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주로 삼척 지역에서 포군을 모아 이강년 의진에 큰 보탬을 주었다.
그해 말 이강년이 이끄는 본진이 가평 지역까지 북상하였다가, 이듬해 5월 일본군 수비대와 충돌하였다. 7월 이강년이 청풍에서 체포된 후에도 남은 의병들을 지휘하며 소백산 자락을 중심으로 한 산악 지대를 배경으로 영춘, 순흥 등지에 끊임없이 출몰하여 일진회원들을 총살하고 일본군과 맞섰다. 그의 활동 때문에 영춘 일대에는 군수가 부임하기를 꺼릴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