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53 |
---|---|
한자 | 禹冀鼎 |
영어음역 | U Gijeong |
이칭/별칭 | 이존(而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활동 시기/일시 | 1895년 |
---|---|
활동 시기/일시 | 1905년 |
거주|이주지 | 충청북도 제천시 동현동 백배미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호좌의진 좌군장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단양(端陽). 자는 이존(而尊).
[활동 사항]
우기정(禹冀鼎)은 제천의 백평(柏坪)[현 제천시 동현동 백배미]에서 살았다. 무과에 급제한 후 무직을 두루 역임하였고,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진 후 유인석(柳麟錫)이 이끄는 호좌의진이 출범하여 제천을 장악하고 충주를 공략하러 나섰을 때 제천의 민군 3,000여 명을 이끌고 참여하여 성원하였다. 한때 점령하였던 충주성을 포기하고 제천으로 돌아오면서 원규상(元奎常)의 뒤를 이어 좌군장을 맡아 박달재 쪽에서 제천을 방어하였다.
가흥에 진지를 구축한 일본군이 남한강 물길을 가로막고 소금 등 필수품이 제천 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자 후군, 선봉군 등과 함께 가흥 공격에 가담하였다. 후에 장기렴이 관군을 이끌고 내려와 평일의 친교를 내세우며 의병에서 이탈하라고 회유하였는데, 이후 직책을 사면하여 의심을 받기도 하였다.
1905년(고종 42) 유인석의 지시에 따라 제천에서 척사적 성격의 향약을 시행할 때 북면 약정(約正)을 맡았으며, 뒤에 광주 참령이 되어 관계에 진출하였다. 국채 보상 운동에도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