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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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徐相懋 |
영어음역 | Seo Sangmu |
이칭/별칭 | 경재(敬哉),관수재(觀水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출생 시기/일시 | 185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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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활동 시기/일시 | 1897년 |
몰년 시기/일시 | 1925년 |
출생지 |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제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대구(大邱). 자는 경재(敬哉), 호는 관수재(觀水齋).
[활동 사항]
서상무(徐相懋)[1856~1925]는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서 태어났다. 동학 농민 운동 때에는 진압군을 일으켜 동학 수령을 체포한 공로로 포상을 받았으며, 제천의 을미 의병에 참여하였다. 유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이끌고 만주 지역으로 건너간 이후 벼슬길에 올라 순릉참봉(順陵參奉)을 지내 처신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고종으로부터 칙유관(勅諭官)에 임명되어 부관 김연식(金璉植)과 함께 만주에 머물고 있던 유인석의 귀국을 주선하였다.
이후 비서원랑, 시종원시종을 거쳐 주로 압록강 이북의 간도 지역을 대한제국의 지방 행정 조직에 포함시키는 일을 하였다. 1897년(고종 34) ‘변계관리사’에 임명되어 통화현(通化縣)·회인현(懷仁縣)·관전현(寬甸縣)·흥경부(興京府) 등을 새로운 행정 구역에 배속시켰다. 서간도 지역의 토지를 측량하여 토지 대장을 작성하고 호구 조사를 하는 한편, 향약을 시행하여 간도 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였으나 1907년 간도 협약으로 간도 일대가 청의 영토로 들어가면서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