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139 |
---|---|
한자 | 金仁求 |
영어음역 | Gim Ingu |
이칭/별칭 | 성시(聖時)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출생 시기/일시 | 1860년 |
---|---|
활동 시기/일시 | 1896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몰년 시기/일시 | 1933년 |
거주|이주지 | 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 |
묘소 | 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 양촌마을 |
성격 | 의병|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근대 제천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시(聖時).
[활동 사항]
김인구(金仁求)[1860~1933]는 단양의 향산리에서 살았다. 1907년(순종 1) 여름 고종이 강제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되었을 때 의병을 일으킨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여하였다. 단양 등지에서 전개된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전투 이후에 충주 방면으로 퇴각하던 본진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복해 있던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의병이 해산된 이후로는 제천시 고암동 쪽으로 옮겨 살았는데, 3·1 운동 때에는 황학수(黃學秀)와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논 8마지기를 판 돈을 황택상에게 주어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전달하기도 하였으며, 이후 제천시 고암동 오개마을에서 동네 살림을 주관하였다.
[묘소]
묘소는 제천시 고암동 양촌마을 뒷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