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10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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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益煥 |
영어음역 | Jang Ikhwan |
이칭/별칭 | 수겸(受謙),중재(中齋)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구완회 |
[정의]
개항기 제천에서 봉기한 호좌의진의 의병.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수겸(受謙), 호는 중재(中齋). 아버지는 호좌의진에서 선비들을 맞아들이는 직책인 사객(司客)이었던 장충식(張忠植)이다.
[활동 사항]
장익환(張益煥)[1866~1915]은 단양의 상진에 살았다. 유중교(柳重敎)의 제자인 이근원의 제자이다. 단발령 이후, 단양에서 의병을 준비하던 중 이춘영(李春永) 등이 봉기하여 단양으로 오자 협력하였다. 후에 유인석(柳麟錫)이 대장이 된 후 단양 민병장으로서 민병을 지휘하여 파수 일을 보았고, 충주성 방어 작전에도 참여하였다.
의진이 제천으로 물러난 이후, 장기렴의 관군이 몰려오자 단양을 방어하기 위한 장의진(仗義陣)을 구성하였는데, 이때 중군을 맡았다. 후에 장기렴이 동족임을 내세워 여러 번 회유하였으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1905년(고종 42) 원용팔(元容八)이 의병을 일으키자, 포군 조직까지 갖추고 있던 향약 조직을 이용하여 적극 가담하여 좌군장을 맡기도 하였다.
원용팔이 체포된 후, 정운경(鄭雲慶)이 봉기하자 참여하여 반강제로 심상훈을 의진에 끌어들이기도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1907년(순종 1) 7월 이강년(李康秊)이 봉기하였을 때에도 좌종사로서 적극 협조하였으며, 국채 보상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적인 저서로 『장익환일기』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