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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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道徹 |
영어음역 | Yi Docheol |
이칭/별칭 | 이도희(李道熹),성관(聖寬),두남(斗南),충민(忠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85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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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893년 |
활동 시기/일시 | 1895년 |
몰년 시기/일시 | 1895년 |
활동 시기/일시 | 1895년 |
추모 시기/일시 | 1896년 |
추모 시기/일시 | 1901년 |
묘소|단소 |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 두무실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 | 참령 |
[정의]
개항기 제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모명(冒名)은 이도희(李道熹), 자는 성관(聖寬), 호는 두남(斗南). 경창군(慶昌君)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유색(李惟穡)이며, 아버지는 이덕초(李悳初)이다.
[활동 사항]
이도철(李道徹)[1852~1895]은 제천시 천남동 출신이다. 행장에는 1853년생으로 기록되어 있다. 제천에서 생활하다 제천향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1893년(고종 30) 음서로 의금부 도사에 임명되었다. 1895년(고종 32) 관직이 참령으로 훈련 3대대 대대장에 이르렀다.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왕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화를 당하자 친일 개화파를 축출하려는 이른바 춘생문 사건(春生門事件)을 계획하였다.
10월 11일 모의가 사전에 누설되어 체포되었다. 모진 형벌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고, 역모죄로 11월 15일 교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순절하였다. 『충민공초』, 『충민공부군행장초』, 도검 등 이도철의 유품이 현재 후손의 집에 소장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제천시 봉양읍 삼거리 두무실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96년(고종 33) 아관파천으로 친일 개화파가 몰락하면서 신원된 뒤 군부 협판(軍部協辦)에 증직되고, 충민(忠愍)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1901년 임최수와 함께 장충단사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