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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898
한자 趙寧夏
영어음역 Jo Yeongha
이칭/별칭 기삼(箕三),혜인(惠人),충문(忠文)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인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5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63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6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6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80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882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884년연표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풍양(豊壤)
대표 관직 지중추부사

[정의]

조선 후기 제천에 거주한 문신.

[가계]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기삼(箕三), 호는 혜인(惠人). 시호는 충문(忠文). 증조할아버지는 조진관(趙鎭寬)이고, 할아버지는 조인영(趙寅永)이며, 아버지는 현령 조병석(趙秉錫)이고 조병기(趙秉夔)에게 입양되었다. 신정왕후(神貞王后) 조대비(大妃)의 조카이다. 어머니는 김유근(金逌根)의 딸 안동 김씨(安東金氏)이다. 생모는 이의석(李義碩)의 딸 한산 이씨(韓山李氏)이다. 부인은 이교현(李敎鉉)의 딸 용인 이씨(龍仁李氏)와 이해석(李海錫)의 딸 전주 이씨(全州李氏)이다.

[활동 사항]

조영하(趙寧夏)[1845~1884]는 1863년(철종 14)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듬해 규장각 대교에 임명되고 이어 홍문관 응교가 되었다가 승정원 동부승지에 특제(特除)되었다. 여러 관직을 거친 후 1867년(고종 4) 이조 참판과 개성부 유수에 임명되었다. 흥선대원군 실각 후에는 금위 대장에 발탁되고, 이어 각 판서와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하였다. 1880년(고종 17)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신설되자 통리기무아문 당상이 되었으며, 이후에도 계속 승진하여 병조 판서가 되었다.

1882년(고종 19) 전권대관(全權大官)으로서 한영(韓英)·한독(韓獨) 수호 조약을 각각 체결하였다. 그해 흥선대원군이 다시 집권하자 지삼군부사에 좌천되었다가 흥선대원군 제거를 위한 대청 외교를 주관하였다. 이후 청나라와의 교섭을 담당하였으며, 청나라와 조중 상민 수륙 무역 장정(朝中商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하였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1884년(고종 21) 지중추부사에 재임 중 갑신정변 때 피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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