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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300827
한자 金南重
이칭/별칭 백진(白珍),야당(野塘),정효(貞孝)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북도 제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양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96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1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23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2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25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28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36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37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41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44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45년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50년 연표보기
활동 시기/일시 1656년연표보기
몰년 시기/일시 1663년연표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 개성유수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진(白珍), 호는 야당(野塘). 시호는 정효(貞孝). 할아버지는 좌의정 김명원(金命元)이며,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수렴(金守廉)이다.

[활동 사항]

김남중(金南重)[1596~1663]은 1618년(광해군 10)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사변가주서가 되었고, 1623년 인조반정 때 가장 먼저 한림원에 진입하였다. 1624년(인조 2) 회답사(回答使) 정립(鄭岦)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와 1625년(인조 3) 병조 좌랑이 되었다. 이후 수찬, 교리, 사헌부 지평·장령을 거쳐 1628년(인조 6) 부수찬이 된 뒤 사간원 사간, 시독관, 부응교, 사헌부 집의가 되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예조 참의로 있으면서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였다. 1637년 사간원 대사간이 되었다가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는데, 호화로운 생일잔치를 한 것이 문제되어 파직되었다.

1641년(인조 19) 사간원 대사간으로 기용되어 세자시강원 우부빈객, 승정원 도승지를 역임하였다. 1644년(인조 22) 다시 경기도 관찰사, 1645년 사헌부 대사헌에 등용되었다. 이후 1649년(효종 즉위년)까지 성균관 대사성,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을 번갈아 맡았다. 1650년 이조 참판이 되고 경천군(慶川君)에 봉해졌다. 1656년(효종 7)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사은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공조 판서, 형조 판서, 예조 판서, 개성 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역대인감(歷代人鑑)』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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