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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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廷虎 |
영어음역 | Jo Jeongho |
이칭/별칭 | 인보(仁甫),남계(南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양식 |
[정의]
조선 후기 제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배천(白川). 자는 인보(仁甫), 호는 남계(南溪). 아버지는 부호군 조충(趙冲)이며, 조응(趙凝)에게 입양되었다. 아들로 대제학 조석윤(趙錫胤)이 있다.
[활동 사항]
조정호(趙廷虎)[1572~1647]는 1590년(선조 23) 사마시를 거쳐 1612년(광해군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에 제수되었다. 아버지 간호를 위하여 관직을 사퇴하였다가, 다시 벼슬길에 나아가 승문원 저작·성균관 전적을 거친 뒤 병으로 사퇴하고 전원으로 돌아가 출사할 뜻을 버렸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사헌부 지평으로 발탁되고 이어 성균관 직강, 홍문관 교리, 사헌부 장령 등을 거쳐 사간원 사간으로 임명되었다.
1624년(인조 2) 병조 참의를 지내고 강원도 관찰사에 제수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왕이 남한산성으로 동가(動駕)하자 군사를 이끌고 급히 남한산성으로 출동하여 요새를 점거하고 적병의 진출을 막았다. 1642년(인조 20) 관직을 버리고 제천으로 돌아가 초야에 은거하였다. 예조 판서·공조 판서·첨중추부사·사간원 대사간 등에 소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고, 말년에도 이조와 병조의 판서에 배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