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8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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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潚 |
이칭/별칭 | 연숙(淵叔),취흘(醉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양식 |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연숙(淵叔), 호는 취흘(醉吃). 아버지는 사섬시 부정(司贍寺副正) 유몽표(柳夢彪)이며, 어머니 고성 이씨(固城李氏)로 예조 참판 이택(李澤)의 딸이다.
[활동 사항]
유숙(柳潚)[1564~1636]은 1588년(선조 21)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7년(선조 30)에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보임되었다. 1599년(선조 32) 예문관 검열이 되었다가 세자시강원 설서·세자시강원 사서를 거쳤다. 1600년(선조 33) 이경전(李慶全), 윤계선(尹繼善) 등과 함께 어사(御史)로서 각도에 분송(分送)되었다가, 장흥 판관(長興判官)이 되었다. 이후 좌천되어 해미 현감(海美縣監)이 되었고, 해미에서 3년을 지내다가 관직을 버리고 여산(礪山)으로 돌아갔다.
광해군 즉위 후 승정원 좌승지·사간원 대사간·성균관 대사성·홍문관 부제학 등을 역임하였으나, 이이첨(李爾瞻)의 횡포를 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두문불출하며 독서에만 전념하였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이 일어나 숙부인 유몽인(柳夢寅)의 역모에 연좌되어 청하(淸河)에 유배되었다. 1634년(인조 13) 특명으로 방면되어 동지중추부사가 되었고, 병조 참판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취흘집(醉吃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고산(高山) 삼현영당(三賢影堂)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