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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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天民 |
영어음역 | Gang Cheonmin |
이칭/별칭 | 사임(士任),은암(隱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제규 |
출생 시기/일시 | 156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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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40년 |
사당|배향지 | 충청북도 제천시 명지동 산279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진주(晉州) |
[정의]
조선 후기 제천의 남당서원(南塘書院)를 세운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사임(士任), 호는 은암(隱庵). 할아버지는 강귀수(姜龜壽)이고, 아버지는 강신(姜信)이다. 셋째 아들 상곡(商谷) 강유(姜瑜)[1597~1668]는 정묘호란 때 화의를 반대하고 항전을 주장하였으며, 1653년(효종 4) 함경남도 병마사로서 각 진의 성을 수축하고 국방 경비를 튼튼히 하며 북벌의 뜻을 지닌 인물이었다. 강유의 자는 공헌(公獻)이고, 시호는 충선(忠宣)이다.
[활동 사항]
강천민(姜天民)[1560~1640]은 제천 현감을 지냈던 이모부와의 인연으로 제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도학(道學)에 전념하면서 후진 양성에 일생을 바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광해군 대에 참봉, 사헌부 지평 등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박인걸(朴仁傑)과 함께 남당서원(南塘書院)을 창건하고 후학 양성에 매진하였는데, 여기에서 배출된 대표적인 인물로 아들 강유와 영안위(永安尉) 홍주원(洪柱元), 문효공(文孝公) 조석윤(趙錫胤), 판서(判書) 김휘(金鰴)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제천시 명지동 산279번지에 강천민의 재실(齋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