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300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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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敬仝 |
영어음역 | Mun Gyeongdong |
이칭/별칭 | 흠지(欽之),창계(滄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제천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제규 |
[정의]
조선 전기 청풍 군수를 지낸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흠지(欽之), 호는 창계(滄溪). 아버지는 전연시 직장(典涓寺直長) 문속명(文續命)이며, 어머니는 강순부 소윤(江順府少尹) 진유경(秦有經)의 딸이다.
[활동 사항]
문경동(文敬仝)[1457~1521]은 1486년(성종 17)에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95년(연산군 1)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성균관을 거쳐 비안 현감(比安縣監)이 되었고, 1506년(중종 1) 강원도 도사(江原道都事)가 되었다. 곧 종부시 첨정(宗簿寺僉正)으로 승진하여 춘추관 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겸하고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외직으로 나가 1508년(중종 3) 양산 군수(梁山郡守)가 되었고, 1510년(중종 10) 삼포왜란(三浦倭亂)이 일어나자 경상우도 방어사 유담년(柳聃年)과 함께 왜적 토벌에 공을 세우고 성균관 사성(成均館司成)으로 진급하였다. 1512년(중종 12) 예천 군수가 되어 임기를 채운 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서 지내다, 1521년(중종 16) 청풍 군수가 되었으나 곧 임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성품이 활달하여 매이는 것이 없었고 해학을 즐겼는데, 이 같은 성품이 벼슬길을 크게 가로막았다. 또한 음주와 독서를 즐겼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특히 사부(詞賦)에 뛰어나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다투어 그의 글을 익혔다고 한다. 저서로는 『창계문집(滄溪文集)』 4권이 있다.